'개혁' 앞장서는 사람은 한 번의 실수도 백번의 잘못으로 과장돼

▲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왼쪽)과 미국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국의회 하원의원. /사진=뉴시스, 미국의회 하원 홈페이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의원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도록 일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무난하고 ‘평타’치는 길이라는 자조도 있다. 뭔가 선각자 같은 의지로 의정에 임해봐야 시기하고 반발하는 세력들 등쌀에 오히려 정치를 오래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국회의원은 이편이나 저편이나 다 마찬가지야”라는 냉소야말로 특정 정치세력이 기득권에 안주해 두고두고, 심지어 세습까지 해가며 정치를 하는 토양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작은 실수를 해도, 닳고 닳은 기성정치인의 소행이라면 “역시나”라는 잠시의 지탄과 함께 곧 잊혀지고 만다. 그러나 평소 개혁을 외치던 사람의 동일한 죄질(?)의 실수는 절대 잠시 끝날 폭풍으로 그치지 않는다.

개혁을 외치는 사람일수록 더 한층 일신에 한 치 의혹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이 이래서 생긴다. 그렇게 개혁하기는 어렵고 닳아빠진 정치인 하기는 쉬우면 과연 언제 깨끗한 정치를 볼 수 있냐고 한탄할 일이지만, 어떻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지난해 중간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가 민주당을 다시 하원의 다수당으로 만들었다. 그 와중에 연일 파격적 개혁행보를 과시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의원이 호불호의 집중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지역구에 들어설 아마존 본사를 격퇴시키면서 한국의 일부 언론에 의해서도 ‘철부지 개혁 의원의 전형’인 것처럼 묘사됐다.

미국의회 하원은 12일 팀 슬론 웰스파고은행 최고경영자(CEO)를 출석시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은행의 지나친 영업이 고객정보 도용을 초래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데 따른 것이다.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의 질문에 대해 데일리와이어는 그가 “웰스파고 CEO를 추궁했지만 오히려 분쇄당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미국의 보수 성향 언론이다.

하지만 보도하는 매체 성향과 별도로,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의 이날 질문은 보는 관점에서 ‘수렁을 들락날락’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질문한 것들은 “웰스파고가 멕시코 이민자 어린이 수용소를 왜 지원하는가” “웰스파고는 왜 환경을 파괴하는가” 이런 것들이었다.

슬론 CEO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를 물으면,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웰스파고가 금융지원을 한 기업들이 결부된 일이라서 묻는다고 설명했다.

사태의 본질인 대형은행의 부도덕한 영업행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고,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이 늘 집중하는 영역으로 이날의 질의응답을 이끌고 갔다. 웰스파고은행 사태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올만한 청문회 장면이었다.

만약 똑같은 의정행태를 한국의 개혁을 자처하는 국회의원이 보인다면, 한국 내 여론은 그가 정계를 떠나는 날까지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얼치기 진보의 한심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모든 개혁 정치인들을 싸잡아 조롱거리로 삼을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개혁정치인의 으뜸 위상을 갖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의 15년 진보정치가 새삼 돋보인다.

고생하기로 따지면,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에서 목숨 걸고 민주화와 노동운동을 했던 심 의원의 고생이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심 의원이 초선 때부터 보여준 모습은 노동만 알거나 반독재 투쟁만 아는 정치인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가 등원 첫해 거둔 최대 성과는 재정경제부의 막대한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재정·금융식견이 필요한 내용이어서 “언제 또 이런 걸 공부했나”라는 찬사도 함께 받았다.

그 후에도 한국투자공사(KIC) 등 노동과 전혀 다른 분야 문제에 핵심을 지적하는 의정을 이끌었다. 이런 면모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2017년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다.

기획재정위원회나 정무위원회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임위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노동운동만 해서 상임위 현안을 잘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커녕 박사학위, 장관경력이 수두룩한 거대양당 의원들이 “심상정 만큼만 해라”라는 질타를 받게 만들었다.

미국 초선의원을 보면서 심상정 의원 얘기를 하는 핵심이유는 한국 국회에도 12일의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같은 모습을 보일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실 올해 29세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의 정치인으로서 실력은 12일 하루의 행적으로 함부로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그가 지역구에서 2만5000개 일자리를 가져올 아마존 본사를 쫓아낸 것은 제3자가 함부로 비난하기도 어렵다. 자신에게 표를 주고 당선시켜 준 지역구민들의 생활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린다는 그의 지적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와 개혁 정치인이란 9개를 잘해도 하나만 잘못하면, 9개를 잘할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파렴치한들이 일거에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억울하지만, 좋은 시대를 앞당기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나섰다면 일신에 남보다 더한 혹독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걸 지난 15년 동안 보여준 사람이 심상정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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