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눈 가리고 아웅하기', 정치에서는 미덕이 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걱정하고 있는 일에 대해 뭔가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대개는 어느 정도 해결에 도움이 되니 걱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는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고, 이전 정권에서 없던 현상도 아니다.

정권마다 집권 초에는 선거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국정은 힘 있게 해보라는 기대를 걸어서 지지율이 70~80%, 심지어 90%에 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점차 사람들은 차기를 생각하면서 생각이 갈라진다. 자연적으로도 지지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낮아지는 경향을 갖는다. 하물며 몇 가지 정책이 집중비판을 받고 나면 하락은 더욱 피할 수 없게 된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에 대해서만큼은 집권 경험이 더 많은 자유한국당의 집권 시절에서 배울만한 점이 하나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의 미덕이다.

일상생활에서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뜻으로 쓰이는 속담이지만, 정치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편향된 확신에 의한 아집을 자제하고 귀를 열어놓고 민심을 경청한다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속이 뻔하지만,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하면 비판이 분노로 넘어가는 일은 막아준다.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각료를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지 않고 퇴진시킨다던가(그러나 별로 다를 바 없는 후임자가 눈가리고 아웅을 만든다), 전기료 누진세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을 때 코끼리 피부를 긁는 듯한 감면책을 내놓는 것 등이다.

문제는 ‘눈 가리고 아웅’을 누구나 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개혁성향을 가진 정파는 비판에 대해 오히려 반발을 더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당국자들과 핵심 지지층이 이런 성향이 강했다. 참여정부가 국정에 노력한 것에 비해 임기말 지지율이 억울할 정도로 낮았던 것은 이런 ‘강대강’ 충돌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세월이 지나서 진심이 인정을 받는다고 위로할 일이 아니다. 국정을 맡은 사람들은 정당한 신뢰를 받을 필요와 의무가 있다. 국정의 효과적 집행을 위해서다.
 

▲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정부가 비판을 받게 만든 정책들은 모두 특정 인사들의 이름과 함께 거론됐다. 그 인사들에 대한 비판의 공통점은 ‘국정이 아니라 자기 시민운동을 했다’거나 ‘국정이 아니라 자기 논문을 썼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연 학문적으로도 검증이 됐을지도 의심스런 ‘최저 임금 1만원’은 한때 70~80%의 지지를 받던 문 대통령의 비판세력에게 원기회복의 좋은 발판이 됐다.

원자력발전이 아닌 다른 친환경발전을 싫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여름마다 예비전력 비상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무조건 탈원전을 하면 전력수급은 어떻게 할 건지 의구심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서방님·처제’ 호칭에 이어 ‘https 규제’ ‘걸그룹 외모 규제’를 들고 나온 건 이 사람들이 나중에 여성운동계로 돌아갔을 때 훌륭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했지만, 과연 이게 정부가 끼여들 일인지, 그리고 여성들의 뜻을 반영한 건지도 확실치 않았다.

최근 구속이 정지된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시절은 한국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공정성의 원칙을 마구 파괴시켰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그 와중에 벌어진 것이 외교부 장관 자녀를 사무관 특채한 이른바 ‘똥돼지 사건’이다. 당사자 장관이 버티기를 하는 정황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진노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는 바로 사임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벌어진 자체가 당시 무너진 공정성을 대변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잠시 원성이 수그러드는 면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나 그 정도로 무분별하지는 않아’라는 반대신호를 보낸 효과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45% 정도에 머물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국정수행에 심각한 차질을 가져올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표면적인 지지율은 50%에 미달해 당국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할 때 반등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의 갈림길이다. 비판하는 사람들한테 강공으로 맞받아치면서 갈 때까지 가느냐와 정치의 본분을 되살려 가장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길로 접어드느냐다.

핵심당국자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지율을 결정하는 국민들은 지금 집권자들이 순수하게 간직했던 정치이상의 실험은 일단 해볼 만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집권 3년차에도 실험정신이 앞선다면 결과만큼은 타락한 정권보다 더 낫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2001~2002년의 허겁지겁 되돌리기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이 정답일까. 정답은 정권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사실 집권을 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스스로 눈을 한쪽으로만 돌리는 습성이 문제다. 특히 개혁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이런 단점을 갖고 있다. 그렇게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없는 기자의 글 하나를 붙잡고 당국자들이 아웅다웅하는 태도 같은 것들은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증상 가운데 하나다. 논란이 벌어졌을 때, 앞서 언급한 자유한국당이라면 덮어놓고 “본인의 불찰” 한 줄로 끝날 일인데, 이것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A4용지 두 장 분량의 해명서라면서 여전히 강변을 이어가고 있는 무모함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별로 타산이 서는 일이 아니다. 정부나 국회가 아니라 시민단체에 머물고 있다면 물론 그럴 필요는 있다.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 자기 시민운동만 하는 사람은 더 뜸 들이지 말고 바로 정책일선에서 퇴진만 시켜도 정책 탄력은 훨씬 좋아진다.

사람만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지냐 싶겠지만, 그걸 통해 민심이 안정되는 효과가 크다. 소득 1000 달러가 안 될 때는 정부가 모든 걸 앞장서야 했지만, 소득 3만 달러 이후의 발전은 국민의 잠재력이 가져오는 것이다. 이 잠재력은 정치가 별로 뉴스가 안 될 때 더욱 빨리 실현될 수 있다.

지지율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순수한 마음은 정치에서는 죄악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만 안타까운 날들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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