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 생보사 '규제 완화' 요구에도 예보 "현행 유지" 고수
예보 "계약자 보호 우선, 2022년 IFRS17 도입 후 검토해 볼 것"

▲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 /사진=임민희 기자

[초이스경제 임민희 기자] 최근 일부 금융업권이 '예금보험료 인하'를 요구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중앙회와 생명보험협회는 '예보료 부과기준' 등을 문제 삼아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예금보험공사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맞서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1500조원의 가계부채 문제로 여신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고, 더욱이 조선·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침체로 경제상황이 악화된 지금 일부 금융협회들이 '예보료 인하'를 요구하는 게 적절한가 라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해당 금융업권은 1998년 외환위기, 2010년 부실 저축은행 사태 당시 거액의 국민혈세가 투입된 곳이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이 최우선 공약으로 '예보료 인하'를 내건 데 이어,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도 예금보험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며 '예보료 인하' 요구 수위를 높였다.

신용길 회장은 전날(1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업계에서는 예보료 내다 망하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며 "금융당국에 예금보험제도 개선을 건의하고, 직접 당사자인 예보와도 (예보료 인하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업권에서 예보료 인하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면서도 "금융당국이 잘 검토해서 경영부담을 줄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예보료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은행·보험 등의 금융회사가 경영부실 등으로 지급불능 상태가 됐을 때 예금자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예보에 미리 쌓아두는 돈이다. 현재 표준보험료율은 은행 0.08%, 보험·금융투자 0.15%, 상호저축은행 0.40% 수준이다.

이와 관련, 저축은행중앙회는 저금리 체제 하에서 타업권 대비 예보료가 높게 책정돼 경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생보협회의 경우 미국과 일본 등 해외사례(수입보험료에만 부과)와 달리 매년 수입보험료 뿐만 아니라 책임준비금에도 예보료를 중복 부과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예보 측은 "특정업권의 경영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바로 요율을 낮춰주기는 어렵다"는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예보 정책제도팀 관계자는 "예보료가 부담될 정도로 경영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사실상 보험사고가 날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며 "부실회사 발생시 계약자 보호가 우선인 만큼 그런 측면에서 예보료 인하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생보협회의 예보료 중복부과 주장에 대해서도 "원래는 책임준비금에만 예보료를 받았으나 보험사들이 부담이 된다고 해서 이를 경감해주기 위해 책임보험료와 수입보험료에서 반반씩 계산해 내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수입보험료는 1년 동안 들어온 보험료이며, 책임준비금은 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위해서 계속 돈을 쌓아놓는 것을 말한다. 만약 해당 금융회사가 파산하게 되면 예보가 대신 계약자에게 돈(책임준비금)을 지급하게 된다. 기금을 미리 준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의 경우 대부분 금융회사가 파산을 하게 되면 그때 가서 수입보험료(매출)에서 각출하는 '사후적립' 방식이라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예보 관계자는 "만약 외환위기로 인한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때처럼 기금부족 사태가 생기면 결국 국민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며 "IMF체제 당시 생보 쪽에만 10조원 가까이의 자금이 들어갔는데, 그렇게 대규모의 돈이 들어간 나라라면 예보기금을 사후각출로 운영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22년에 IFRS17(새국제회계기준)과 K-ICS(신지급여력제도)가 도입되고 자본확충을 잘해서 안정적으로 자본을 갖고 있다면 그때 (예보료 인하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반대로 자본확충이 부족한 회사들은 오히려 퇴출이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와 생보업계는 예보료 인하를 비롯한 각종 규제완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예보 등 금융당국이 회의적 반응을 보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여건 악화로 금융사들의 경영부담이 커진 것은 이해하지만 하필 국가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금융부실 가능성이 커진 지금 '예보료 인하'를 요구한 것은 시기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금융권은 크고 작은 금융사고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지금도 삼성생명 등 대형생보사들은 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과 암보험금 지급거절 논란 등으로 일부 고객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번 사안을 두고  금융사들이 소비자들과의 신뢰회복 보다는 여전히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용길 회장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보험업계가 여전히 고객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는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서비스를 제고하고 사회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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