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임 실패... 외신마다 여전히 '땅콩 분노' 언급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조현아 씨가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후 조사를 받기위해 검찰청에 출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27일 대한항공 이사연임 실패를 전하는 외신이 공통으로 포함하는 단어가 있다. ‘땅콩 분노(nut rage)’다. 이 단어를 검색하면 바로 조양호 회장과 주주총회 관련 뉴스를 찾을 수 있다.

이미 해외포털에도 시사용어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영문 위키백과에는 ‘땅콩 분노 사건(Nut rage incident)’ 항목도 존재한다.

좁게는 조양호 회장의 큰 딸 조현아 씨가 2014년 뉴욕 JFK 공항에서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한 행위를 말한다.

이 사건 하나로 인해 조 회장이 이사직에서 밀려난 건 아니다. 이후 드러난 조 회장 일가의 모든 소동, 물 컵 던지기와 “나가! 이 XX야” 난동이 모두 ‘땅콩 분노’에 포함되면서 이 신종 시사용어의 몸집을 키웠다.

외국에서도 막장드라마 같은 대그룹 총수의 잡음이 없는 건 아니다. CBS와 패러마운트 영화사 등을 보유한 미디어 그룹 비아콤의 섬너 레드스톤 회장 딸과 손녀, 간병인 등이 얽힌 다툼이 벌어지면서 이 회사를 오래 이끌어온 전문 경영인들이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처럼 총수 일가가 직접 원시적인 폭력으로 회사의 하급 직원들 안위를 위협하는 일은 정말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 재벌의 공통된 현상도 아니다. 전적으로 알려진 것만 놓고 따졌을 때 한진그룹만의 독보적 현상이며, 이에 필적할만한 다른 사례라면 아시아나에서 여승무원들이 회장을 기쁘게 하는 일에 우루루 동원됐다는 일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한국사회에 생소한 일이다보니 이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만큼은 ‘적극적 주주권’, 또는 ‘스튜어드십 논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 건만큼은 국민연금도 제 코가 석자였던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국민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미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허장성세에 가까울 뿐이다.

‘최순실 파동’과 삼성물산 합병 때문에 전임 이사장이 옥고를 치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양호 회장 최후의 수호신을 맡아달라는 요구는 해도해도 너무나 무리한 요구였던 것이다.

오랜 세월, 대한항공을 이끌어 온 조양호 회장이 타의에 의해 경영참여를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나 이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회피했다.

더 나쁜 시나리오란, 국민연금 덕택에 조 회장이 이사직을 연임하는 경우였다. 이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한국 금융시장의 규율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딱 좋은 일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여러 선진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한국 금융시장에는 전례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돕는 것은 좋은데, 그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국가 신인도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시장규율의 준수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주식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의 행보다.

국민연금이라고 해서, 지난 세월 드높은 국민적 신뢰를 얻은 것은 아니다. 섣부른 논리로 경영권에 제동을 걸려고 했다간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반발이 곧 바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대한항공, 좀 더 구체적으로 조양호 회장 일가가 초래한 소동은 너무나 명백한 선택지를 던지고 있었다. 경영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고려의 여지도 전혀 없는 것들이었다.

막장드라마로 유명한 작가들조차 울고 갈 실제사례들이 그치지 않고 빈발했는데, 국가연금제도가 이사직을 지켜주는 시장이라면, 전 세계 그 어느 투자자가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해외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곳은 기업공개도 안하고 가족들이 알아서 회사를 꾸려가는 패밀리 기업뿐이다.

조 회장이 이사직을 내놓았어도 그의 대주주로서 지위는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재벌회장들은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몇 년간 이사직을 내려놓기도 한다. 조양호 회장으로서는 최근 몇 년을 계속해서 수그러들지 않는 원시적 논란을 어떻게 하면 잠재울까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회사와 국민경제, 그리고 이 회사 총수일가 모두를 위해 더 다행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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