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대국... 그러나 실패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미국이 정말 변한 것도 있겠지만, 원래 그랬던건데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것도 있을 것이다.

1. 대통령이 중앙은행 정책에 간섭한다.

오랫동안 한국은행 기사를 써 온 기자로서, 매우 난처해지는 미국의 변화다. 그동안 한국 대통령들의 금리간섭에 대해 “금융최강국 미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이라고 목청을 높였었다. 그런 기사들을 썼던 것 때문에 요즘은 한국은행 사람들로부터 도망다닌다.

차이점. 한국 대통령 중에 한국은행에 대해 “미쳤다”고 폭언한 사람은 아직 없다.
 

2. 금융당국자가 은행장을 쫓아낸다.

팀 슬론 전 웰스파고은행 회장은 지난달 12일 미국의회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할 때, 인상적인 답변을 남겨 은행의 위기도 넘기고 금융당국에도 좋은 인상을 남길 의욕이 가득했다.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의회 출석을 마친 후, 미국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청(OCC)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종합선물세트’로 그를 꾸짖었다. 슬론 회장은 26일 사퇴를 발표하고 사흘 후 퇴임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시중은행장 한 명의 연임이 금융당국자들의 우려표명 이후 무산됐다.

차이점. 한국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한마디 했다고 시중은행장이 물러나는 것은 1998년 이전 한은이 은행감독원을 갖고 있을 때 있을 법한 얘기다. 지금은 한은 총재가 은행장들 모아서 밥 한번 대접하기도 어렵다.

또 하나. 슬론 전 회장 퇴진과정에서 래얼 브래너드 Fed 이사가 웰스파고은행 직원 세 명을 직접 만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Fed 이사들은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들과 달리 상당히 험한 일도 하고 있다.
 

3. 국회의원들의 헛발질 생중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의 의회 출석 때, 의원들 질문이 수준에 떨어졌다는 지적은 오로지 첨단기술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자기과시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자기분야만 아는 사람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지적도 이것저것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다.

한 의원이 순다르 피차이 구글 회장에게 아이폰을 휘두르며 따졌다가 피차이 회장이 “의원님, 그 제품은 다른 회사에서 만드는 거”라고 대답하는 촌극도 있었지만, 이 의원은 원래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워낙 많은 논란을 만든 사람이다.

그러나 미국 7대은행장을 불러놓고 7시간동안 청문회를 벌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여의도 한국국회를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금융위기 10년을 재조명하는 자리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은행의 총기산업에 대한 지원 철회를 비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은행들이 19세기까지 존재했던 노예제도에서 이득을 얻은 것이 없냐고 따졌다.

차이점. 한국 의원들은 저런 헛발질 질문과 차원이 다르게 출석증인을 괴롭히는 더욱 무시무시한 기술이 있다. 8시간 넘게 사람을 불러놓고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긴긴 시간 긴장된 자세에서 입의 근육도 풀지 못한 사람은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위원장 말씀을 들을 때 더더욱 국회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지나친 복종심으로 인해, 그는 다음해부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회출석을 사양하려고 한다.
 

▲ 백악관의 모습. /사진=뉴시스.


4. 입시부정.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까닭 없이 한국의 교육제도를 연이어 찬양하더니 마침내 한국의 입시비리까지 빼닮아가고 있다. 헐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지도층 인사들이 자녀를 대학에 부정입학시켰다가 들통 났다.

수법은 운동과 담쌓은 자녀를 운동선수로 둔갑시키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요즘 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의 생활모습에 주목하는 건 K팝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이점. 미국의 ‘웅장한 스케일(?)’을 살려서 대학입학시험인 SAT 담당자에게 뇌물을 줘 자녀의 점수를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5. 인맥경제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 입시부정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더욱 주목되는 분석이 있다.

최근 금융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대기업 경영진들이 네트워크 효과(network externality)에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남다른 창의성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데 보다, 자신의 인맥으로 로비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한다는 얘기다.

요즘 미국부모들이 미국판 ‘SKY캐슬’처럼 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부정까지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 식의 사회풍토 변화로 인해 미국 실물경제의 역동성도 떨어진다고 금융연구원은 지적했다.
 

한국과 중국사의 왕조 변화는 실패 대응 경험을 의미한다.

오늘날 미국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역량, 국민들의 시민의식 등 모든 면에서 웬만한 나라를 압도한다. 특히 한국과 중국 등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느렸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그렇다.

도무지 다른 나라보다 약한 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커다란 의문점 하나를 안고 있다. 과연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느냐다.

한국과 중국은 수 천 년 역사에서 하나의 체제가 실패했을 때 왕조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국가를 만들어 온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은 500년 주기, 중국은 200년 주기로 왕조 이름을 바꿨지만 살아가는 사람은 그대로였다.

1776년 건국한 미국은 이런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체제를 유지했지만, 시대가 변화를 요구했을 때 과연 미국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는 단순히 특이한 대통령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다. 미국은 좀 더 커다란 질문을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나 중국을 닮아가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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