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작동시킨 참여정부 강점이 안보인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제가 부진하다고 참으로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것은 억울함으로 가득했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억울한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의 취임 첫해, 북핵 위기와 사스의 창궐, 카드대란으로 3% 저성장에 시달린 것을 제외하면 경제는 줄곧 5% 안팎 성장을 했다. 그러나 이보다 금융시장의 성과가 더 크다. 주식시장이 탄생한 이후 수 십 년 동안 잘해야 주가지수 600~700 수준을 유지하다 3년차부터 비약적 성장을 거듭해 사상 처음 2000을 도달했다. 오늘날 코스피지수의 근간이 이때 형성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가급등은 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이뤄졌지만, 정부정책이 때를 놓치지 않고 시대요구에 순응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인적구성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와 많은 동질성을 갖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해 노무현 시대의 강점을 다시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당연하다.

일단 경제가 부진하다고 해서 극심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현 정부와 참여정부가 아주 비슷하다. 툭하면 ‘좌파가 경제를 어쩌구저쩌구’하는 상투적 어구의 빈발도 똑같다.

▲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시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제를 취재하고 있는 관점에서 느끼는 하나의 차이는 있다.

노 전 대통령 때 비난은 좀 추상적인 얘기들이 많았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정서 때문에”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이보다는 비판여론에 숫자가 많이 들어간다. 최저임금이 그렇고, 탈원전이 그렇다. 원전하나를 줄이면 거기서 비롯된 전력부족량은 어떻게 할 건지. 대안으로 제시하는 태양광이나 다른 방법들은 어느 정도 전력대체가 검증된 건지.

종합부동산세도 2004년 최초 형태는 무조건 대형아파트만 공급하는 풍토를 근절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이 법안이 상임위에서 논의될 때는 재정경제위원장을 맡은 김무성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앞장 서서 자기당 의원을 설득할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점차 변형돼서, 특정지역을 겨냥한 세금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나왔다. 지역을 불문하고 집집마다 “우리도 공시지가를 알아봐야 되는 것 아닌가”란 말이 나온다면, 내용이 한참 바뀐 것이다.

앞선 두 정권은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다 집권한 사람들이어서, 9년 동안 “7% 성장”과 같은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대 구호만 외쳤지만 오늘날 남는 건 2010년 6% 성장의 기록 한 줄 뿐이다. 그건 그것대로 비판하고 재검토할 일이다.

중요한 건, 지금 정부가 참여정부의 후배들다운 모습을 보이느냐다.

지금 정부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노무현 경제정책의 장점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경제와 정책을 취재하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최대 장점은 ‘시장경제’에 있었다.

단순히 시장의 공정함을 살리자는 순진한 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걸 통해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의도는 좋았다’는 얘기는 아예 이 세상에 없는 말로 알고 살아야한다. 학자도 아니고, 시민운동가도 아닌 정책당국은 오로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는 10여년 전의 주가급등이다. 단순히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재벌 회장들만 감방을 드나든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지배구조를 개선해 좋은 주식을 만들어놓으면 그걸 사는 국내 매수기반도 함께 강화해야 했다. 사모펀드(PEF)법이나 연기금주식투자 법이 만들어진 게 참여정부 때다.

그때도 '연기금사회주의' 라고, 지금의 '연금사회주의' 에서 '기' 자 하나 빠진 말이 무성했었다. 국내에서 재벌주식 사는 사람이 늘었다고 해서 재벌의 주인이 바뀐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주가만 올라갔을 뿐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실무공무원들도 자발적으로 참 열심히 일을 했다. 그 때 실무진에서 맹활약했던 관료들은 어떤 까닭인지 그 후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기대만큼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좀 의아하다. 본인들의 성장한계인지, 중용이 안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부의 행정력을 단속보다 경쟁 확보에 투입하고 투자기반을 제한하는 장벽을 철폐해 수요와 공급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동원됐다.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지금 정부는 부양정책을 극도로 아껴서 이번 호황은 오래 갈 것”이라는 불만이 섞인 듯한 자찬을 한 적도 있다. 인위적 개입을 최대한 자제했다는 방증이다.

시장을 달리 표현하면 가격을 만드는 곳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이 인위적이거나 탐욕적인 권력의 간섭 없이 시장 자체로 형성되는 메카니즘이 정착돼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믿고 돈을 맡길 곳으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참여정부의 성과가 있다면 이는 ‘시장경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길이 반드시 시장경제만 있는 건 아니다. 1970년대는 사채동결과 같은 완전히 반시장적인 정책이 한국 경제의 큰 고비를 넘어가는 급한 처방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간 부문이 어느 단계이상 성장하고 나면 시장경제는 불가피한 길이기도 하다.

지금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요 논란은 시장의 작동과 동떨어진 것들이다. 최저임금을 예로 들면, 정부가 특정한 임금수준을 정해 이것을 노동의 수요와 공급자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어떻든 노동력의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메카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경제가 18세기와 같은 자유방임경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때에 따라 정부정책의 간섭이 불가피한 면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경제 순환이 막혔을 때, 이를 뚫어주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가 특정수준을 정해 그런 이상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반시장적 몽상은, 성과는 둘째 치고 시장경제를 잘했던 사람들의 개성과 전혀 안 맞는 것이다.

자치단체장마다 시장에서 알지도 못하는 유통수단을 들고 나오는 것이나, 덮어놓고 현금 제공을 하는 것 역시 시장원리에는 교란요인이다.

경제는 나쁜 정책이든 좋은 정책이든, 일정기간 시행이 되고 나면 그 자체로 균형을 형성한다. 앞선 정부의 정책이 나쁘다고 해서 이걸 점진적이 아니라 급격히 바꾸려고 하면, 이미 하나의 균형에 익숙해진 시장참가자들은 예상도 못한 교란을 겪게 된다.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시장경제를 좀 했던 사람들의 후배들이 정책을 맡았는데, 상당히 많이 달라보인다. 혹시라도 시장에 대한 믿음이 희박해졌다면 이제라도 되살리기를 기대한다.

요즘 굵직한 기업의 새 주인 찾기 얘기도 나온다. 워낙 큰 기업 처리에 정책적 고민을 해야 하는 건 마땅하지만, 무조건 당국의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는 반시장적 자세는 여기서도 삼가야한다. 좋은 정책은 시장의 흐름을 타고 정책의 힘을 최대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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