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5-21 11:47 (화)
화폐단위 변경, 한은 총재들의 딜레마가 된 사연
화폐단위 변경, 한은 총재들의 딜레마가 된 사연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04.18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발부터 '리디노미네이션 언플' 오해 초래... 얘기만 나오면 질색하게 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은행 총재에게 화폐 액면단위 변경, 즉 리디노미네이션은 대를 잇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다.

한국 경제는 경제규모 확대와 시간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이제 기술적 문제까지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조(兆) 다음의 숫자단위 경(京)을 써야 할 때가 다가온다는 얘기도 있다.

원론적으로, 중앙은행의 수장이 이 문제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그런데도 한은 총재들은 좀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겠다고 나서지 못한다. 이주열 총재도 마찬가지다.

당위성을 물어보면 당연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곧바로 “지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주열 총재는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기대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많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고, 지금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경제 활력과 생산성 제고에 집중할 일이 훨씬 많고 중요한 때”라고 못박았다.

누군가를 향해 “절대 걱정할 일 없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눈치가 역력하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기자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은 총재들이 리디노미네이션 얘기만 나오면 질색을 하면서 손을 내젓는 것은 정책의 동반자 재무부처를 의식한 면이 크다.

기획재정부가 줄곧 리디노미네이션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라고 해서 이걸 계속 이대로 놔둘 작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까지 단위를 초과하는 엄청난 숫자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될 곳은 국가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재무관료들은 여전히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경계감이 압도적이다. 부작용뿐만 아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곁든 인상이 좀 있다.

화폐액면단위 변경이 ‘리디노미네이션’이란 외국어로 국민들에게 본격 알려진 계기가 재무부처에게 의심을 증폭시킬만한 정황이 있었다. 수 십 년 전 얘기다.

한국은행 총재가 새로 부임했었다. 그의 취임에 당시 경제부처 역시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차기 총재로 거론된다는 건 취임 반 년 전 금융통화위원도 얘기할 정도였다.

예상대로 그가 취임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금리부터 올렸다.

이 때 한국은행과 재무부처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은, 취임하기가 무섭게 올린 금리에 대해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는 것으로도 드러났다. 새 총재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다.

며칠 후 그의 언론인터뷰가 있었다. 국내 최대 일간지로 분류되는 매체였다.

여기서 그가 리디노미네이션의 얘기를 꺼냈다.

물어봐서 나온 얘기인지, 작정하고 꺼낸 얘기인지 당사자만 알 일이다.

이것이 재무부처 입장에서 상당한 적대정서를 가져왔다. 일각에서는 “누구 덕에 그 자리에 가서”라는 시대에 어긋난 불평을 쏟아내면서 큰 신문을 골라 ‘선물’을 주는 언론플레이부터 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이로부터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화폐 액면’을 함께 얘기하기 아주 곤란한 관계가 됐다.

얘기를 꺼냈던 총재는 한은 내에 관련 연구를 지시해 상당한 결과를 축적했다. 이를 이끈 사람은 한은 출신으로 예전 청와대 핵심요직을 오래 맡아서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한은 내에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일을 하기에 최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 후, 한은 총재들이 몇 사람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화폐액면단위는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1960년대와 같은 ‘화폐개혁’ 불안을 가져올 소지도 있다. 조심스런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속성에다가 양대 기관 사이에 ‘자기만 튀고 보자는 거냐’는 투의 불신까지 겹쳤다.

그러나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양대 기관이 한없이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원화 액면은 유로존의 단일통화 유로로 통합되기 전의 이탈리아 리라보다 약간 높다. 1이탈리아리라가 1원보다 작았다는 얘기다. 달러나 파운드처럼 선진국 통화는 다 비싼 것으로 알고 있던 국민들에게 이탈리아는 이런 이유로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이보다 더 작은 통화는 터키리라였다. 1990년대만 해도 원화와의 거래에 터키리라는 여러개 단위를 더 표시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터키는 2005년 100만 리라를 1리라로 바꾸는 화폐개혁에 성공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