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 투자부진이라는데, '트럼프 흉내'가 해답인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은행이 발표하기 직전까지 ‘마이너스 성장’의 ‘마’자도 뻥긋하지 않았던 정부다. 숫자는 밝히지 않더라도 “지난 분기 성장이 이례적으로 부진하다”는 식으로 국민과 시장에 예방적 경고를 줄 수도 있었지만, 그 어느 당국자도 지극히 태평한 세상인 척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환율이 18원이나 올라갈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한 사람들인 듯하다. 그 나라 경제의 구매력 총량을 나타내는 것이 통화가치다. 그게 마이너스 성장률과 함께 원화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한 주가 바뀌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들을 만났다. ‘음수’ 성장률이 공개되기 전까지 무슨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서서 뭐라도 한 마디를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꺼낸 해법이란 게 ‘금리 간섭’이다.

홍 부총리는 “금리에 대해선 언급하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떼놓고는 “금리인하에 대한 지적이 많이 있다”는 앞줄 따로, 뒷줄 따로 발언을 내놓았다. 부총리들 발언치고 상당히 노골적인 편인데, 여차하면 홍 부총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 열석발언권이라도 행사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어설픈 ‘도널드 트럼프 흉내’로 한국도 미국처럼 고성장을 해보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실 지금 형편이면 금리 인하에 기획재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설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분기중 0.3%의 마이너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2·3·4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올해 성장률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분발”을 강조했다.

GDP 발표 전에 나왔어야 할 말이지만, 이주열 총재에게 그런 결기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건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어떻든 다음날이라도 한은 총재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한은 역시 뭔가는 하려고 한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금리만큼은 한은에게 맡기고 지켜보는 것이 재무부처 장관의 당연한 도리다.

그걸 못 참고 또 금리 발언을 꺼내는 홍남기 부총리에 대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인내심 부족이 아니다.

달리 대책이 없으니 한국은행 금리인하라도 기재부가 가져가서 생색내려는 것 아닌지가 의심되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중앙은행과 진심어린 협조나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 부총리는 이날 경제부처 장관들도 만나서 이것저것 대응책을 내놓았다. 반도체와 테크놀로지 기업을 지원하고, 서비스산업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홍 부총리가 장관들 앞에서 내놓은 이런 대책들보다 기자들을 복도에서 만나 말미에 꺼낸 금리얘기가 더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수출의 기여도가 마이너스 0.8%포인트, 설비투자 기여도가 마이너스 0.6%포인트다.

수출이 제자리만 지켰어도 마이너스 0.3%의 전체성장률이 0.5%의 평범한 성장이 됐을 것이고, 설비투자가 깎아먹지만 않았어도 0.3% 성장이 된다는 의미다. 두 요인이 합쳐져서 분기 중 1.1% 플러스 성장했어야 할 경제를 0.3% 마이너스 성장시킨 것이다.

수출은 반도체 부진이 결정적인 것으로, 아마존과 같은 세계 거대기업들이 반도체 주문을 줄이고 재고를 활용해서 한국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시장의 사이클이 하반기부터는 다시 상승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가 실적부진을 예고했을 때 외신들이 전한 얘기도 이와 같다.

반도체부진은 정부역할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지나친 반도체 편중의 체질 개선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름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 설비투자 부진을 집중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투자가 멈췄다. 이에 대해 정부가 할 역할이 큰데 과연 홍 부총리와 경제장관들이 내놓은 대책이 드러난 문제에 대한 맞는 해답이냐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왜 투자가 멈췄나. 투자부진이 일시요인인가 장기요인인가. 해답이 없으면 여기에 대해 우선 분석이라도 나와야 한다.

문제가 명확하면, 해답도 명확할 터이다.

그런데 홍 부총리 해답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부분은 기준금리다. 1.75% 금리가 높아서 투자가 부진한 것일까. 그나마도 이건 홍 부총리 일이 아니라 한국은행 일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마이너스 성장의 ‘주범(?)’이라면, 이게 확실한 해결책이겠지만, 지금 제일 시급한게 금리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도 이 총재는 지난해 끌려가듯 금리를 올린 매우 특이한 중앙은행 총재다. 한은이 11월 금리를 올리기 전까지 무수한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금리를 올리라고 한국은행을 난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었다.

기획재정부가 핵심을 못 짚은 것인지, 핵심을 짚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의 일을 가져와서 생색내려는 것인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핵심문제를 비껴가면서 한국 경제가 과연 ‘분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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