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 담긴 본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어미 잃은 자식은 서럽게 울 뿐이지만, 아비 잃은 자식은 곡을 하면서도 가끔씩 머리 들어 주위를 살펴본다.

전통적으로 부모 잃은 자식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 양친에게 정이 더하고 덜하고를 떠나, 아버지 돌아가신 건 어머니와 또 다른, 남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며칠 째 부왕의 임종을 지키는 세자는 쌓인 피로가 효심을 앞서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그러다가 부왕에게 더 이상 숨결이 느껴지지 않을 때 흠칫 놀란다.

의관이 다가가 왕을 살펴본 후, 세자와 함께 임종을 하고 있는 고명대신에게 몇 마디를 건넨다.

대신이 세자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절애하소서”라고 아뢴다.

세자의 두 뺨에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부왕이 승하하셨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 곡은 하지 못한다.

대신은 대궐의 뜰에 현재 어떤 신하들이 모여 있는지를 점검한다. 명성 있는 왕족들, 삼군의 지휘권을 가진 장수, 수 십 년 재상 경력에 막대한 인맥을 갖춘 인물들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이들이 모두 대궐 뜰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비로소 발상을 하고 궁궐 안팎이 통곡하는 소리에 뒤덮인다.

아비의 죽음은 ‘천붕지통’의 슬픔뿐만 아니라, 일족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몰렸다는 경고와 함께 찾아왔던 것이다.

부모는 살아생전 자식을 위해 평생을 보내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자식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남긴다. 믿을 사람과 못 믿을 사람의 구분이다.

부모 잃은 자식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누가 진정한 친구고, 누가 배신자인지를 보여준다.

예전에는 감쪽같은 말로 들었지만, 부모 떠나면서 크게 경각심을 얻은 자식은 이제 사람의 말을 더욱 가려듣게 됐다.
 

▲ 영화 '대부'에서 빅토 꼴레오네(말론 브란도 연기)가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 연기)에게 '패밀리' 사업에 대한 노파심을 전하고 있다. /사진=유투브 동영상 화면캡쳐.


‘패밀리’ 사업을 물려받은 마이클 꼴레오네는 아버지 비토의 오랜 친구 가운데 클레멘자가 특히 의심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클레멘자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가끔씩 아버지를 찾아가면 들은 얘기 또 듣기를 반복하다 왔다. “내가 죽으면 저들이 네 부하 가운데 하나를 시켜서 협상을 제의할 거다. 그 자가 배신자다”라는 얘기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빅토가 죽자마자, 마이클을 찾아와 바지니 패밀리의 협상 제안을 전한 것은 클레멘자가 아니라 테시오였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클레멘자에게 가졌던 오랜 의심은 바로 테시오에게 넘어갔다.

소설과 영화에 나오는 얘기지만,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부모 잃은 사람을 위로하는 자리에서는 혹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몇 가지 얘기가 예법에 정해져 있다. 꼭 이대로 얘기하라는 것은 아니고, 본래 취지는 불필요한 다른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커다란 기업을 이끌던 총수가 갑자기 타계하면, 직원들뿐만 아니라 주주들 역시 기업가치의 보존을 가장 걱정하게 된다. 유족들 역시 가족을 잃은 슬픔이 크다고 해서 가업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는 없다.

상사를 치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뜻을 표하고 갔다.

그 얘기들은 대부분 남은 가족의 안위, 그리고 기업의 장래를 위한 것들이다.

개중에는 일부, 가족이나 기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해에 따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섞여 있게 마련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다녀가다 보면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다.

선(先)회장을 위로한다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누군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이 이런 사람의 대표적 유형이다. 돌아가신 남의 아비를 내세워 자기 이해를 챙기고 있다.

위로를 하러 가는 사람이면, 어떻든 당장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낼 도리를 주선하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그런 심정에서는 느닷없이 누구를 더욱 미워하게 자극하는 마음이 생기기 어려운 법이다. 아비 잃은 사람을 찾아가서 나는 나서기 싫고 자네가 대신 앞장 서 싸워달라는 게 할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 영면하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안과 기업 모두 본궤도에 돌아온 마당에, 사람들이 전한 한마디 한마디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아버지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 된다. 사람을 가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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