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 2세 벨기에 전 국왕. /사진=벨기에 왕실 홈페이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벨기에의 알베르 2세는 전 국왕으로 올해 84세다. 그는 2013년 아들 필리프 국왕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중국이나 한국의 왕실법으로는 태상왕이 되겠지만, 서구 왕실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한국도 물러났다고 자동으로 태상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절차가 있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세종 즉위 첫해 두 명의 상왕이 있었다. 정종과 태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종을 노상왕, 태종을 상왕으로 기록했다.

세종 즉위 닷새 후 기사에서 “임금이 상왕전에 갔다가 돌아와 노상왕전에 가니, 이때 상왕(태종)과 공정왕(정종)이 다 상왕인 까닭으로, 공정왕을 노상왕이라 일컬어 구별하였다”고 기록했다. 정종의 묘호는 262년이 지난 숙종 때에 이르러 올린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공정왕이란 시호로만 거론됐다.

태종으로서는 늘 둘째형 정종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지나친 예우가 자신의 후손 임금들에게 정통성 시비의 빌미를 줄 것을 염려했다. 정종 생전에 태상왕으로 더욱 높이지 못한 것이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았음을 밝힌 적이 있다.

정종이 세종1년 승하하고, 세종3년에는 조정에서 태종을 상왕에서 태상왕으로 높이려는 논의가 있었다.

태종은 “내가 태상을 사양하는 것이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우리 태조가 태상왕이 되었다는 것이요, 둘째는 인덕전(정종)을 태상으로 봉하지 못하였던 것이요, 셋째는 덕이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흘 후 그는 태상왕으로 높이는 세종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세종이 유정현과 이원에게 태상왕의 책과 보를 태종에게 보내자, 태종은 책을 받는 예는 생략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약간 불손한 언어를 쓴다면, 태종은 ‘파파보이’의 면모가 보이는 세종으로부터의 번잡한 예법은 생략하고 나흘 전의 발언과 달리 본심은 “당연히 그래야지”인듯 이를 받아들였다. 인간적으로는 큰아들 양녕대군에게 애착이 대단히 강하면서도, 장자를 어렵게 대한 면이 있는 태종이었으니 만약 태상왕의 존호를 올리는 주체가 양녕이었다면 이날의 모습이 이렇게 간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알베르 2세라는 칭호는 벨기에의 ‘태상왕’격인 전 국왕말고 또 한 사람있다. 이 사람은 모나코공국의 알베르 2세다. 헐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아들이다.

두 명의 알베르 2세에게는 공통의 논란거리가 있다. 혼외정사다.

벨기에의 알베르2세 전 국왕은 혼외자 의혹에 따른 유전자검사를 거부할 경우 매일 5000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델피네 뵐이라는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가 1966~1984년 알베르 2세와 연인관계였으며 자신이 이들 소생이라며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모나코의 알베르 2세는 경우가 좀 다르다. 그는 여성편력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공인(?)’ 받고 있다. 혼외자 남매도 있다. 그러나 혼외자라는 점 때문에 알베르 2세 이후의 공위계승권 논의에서는 제외돼 있다. 혼외자를 인정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이들을 돌보고 있다. 둘 다 알베르 2세의 2011년 결혼 이전에 태어났다.

부모와 자식의 천륜을 숨기는 것은 사람의 법도뿐만 아니라 본심에도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다. 오늘날의 기술도 크게 발전했으니 명확한 사실을 제대로 밝힌 후에 사실이 확인되면, 천륜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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