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소리 하러 가는 길이지만 이왕 가는 길에 주변 명소 실컷 방문

ADB이사들에겐 컨설테이션트립 말고도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여행이 있었다. 가기 싫어도 몇 달 만에 한번 씩은 꼭 떠나야만 하는 여행이 있었다. 바로 ‘재원보충여행’이 그것이었다.

재원보충회의(Replenishment Meeting)를 위한 여행은 말 그대로 ADB가 빈국에 자금지원을 하는데 필요한 소요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재원보충회의는 주로 네덜란드나 독일(베를린), 덴마크, 홍콩, 필리핀(마닐라), 말레이시아, 일본(구주) 등에서 열렸는데 이들 국가에서 열리는 회의를 두고 ‘도너스미팅(Donor's Meeting)’ 또는 ‘기부자 미팅’이라고도 불렀다. 주로 재정(돈)을 기증하는 나라를 ‘도너’ 또는 ‘기부자’라고 해서 이런 회의 명칭이 부여됐는데 이 회의에서 돈을 많이 기부한 나라는 폼을 잡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꼬리를 내리기 일쑤였다.
 
재원보충여행 또한 나와 우리가족에게 있어 각 국을 섭렵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나는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면서도 당시에 가보지 못한 나라가 많았는데 ADB시절 재원보충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곳을 더 가볼 수 있었다. 특히 ADB측은 이사들에게만 경비를 대 주었지만 항공료만 더 내면 가족도 동행할 수 있어 유익했다. 잠은 예약된 호텔에서 함께 자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재원보충회의가 열릴 때는 공식 회의를 마친 뒤 잠시 휴가를 내어 인접 국가들을 둘러보곤 했는데 이는 ADB이사들만이 가진 특전이었다.
 
나 또한 유럽지역 도너스 회의에 갈 때는 짬짬이 아내와 함께 유학시절에 가보았던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 북구는 물론이고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까지도 가 볼 수 있었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서는 각 나라마다 특색이 있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노르웨이에서는 당시에도 연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나라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연어스테이크, 연어샌드위치 등 연어 음식이 아주 발달해 있었고 맛 또한 일품이었다. 일부러 시내에 있는 유명한 연어 샌드위치 식당을 찾아가 먹어보기도 해봤는데 정말 입속에서 술술 녹아내렸다. 노르웨이에는 또 노벨상을 심사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크기는 작고 아담했지만 그 곳에서 유명한 노벨상이 수상된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작은 사무실의 규모에 약간 놀랐다. 이 나라에선 한때 그 아름다운 피오르드식 협곡 해안을 근거지로 해적이 판치기도 했지만 그 후손들은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다.
 
덴마크 항구에서 배를 조금만 타면 말뫼에 금새 닿을 수 있는 곳이 스웨덴이었지만 우리는 항공편을 이용해 밤이 길고 낮이 짧은 백야의 나라 수도인 스톡홀름으로 들어갔다. 그 옛날 아라비안들이 이곳까지 침략해 왔는지 스톡홀름에서도 그들의 흔적인 초생달 모양의 깃발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스웨덴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덩치가 크고 늘씬하며 살결이 하얀 미인이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스칸디니비아 국가중 가장 잘사는 나라로 자리잡고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도 해변에 있는 인어상을 비롯하여 볼거리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펄펄 내리는 밤이었는데 짐을 풀고 다음날 시내 구경을 나가니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날이 바로 덴마크의 잘 생긴 왕자가 홍콩 출신의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는 날이었다. 그러다보니 눈 속의 거리마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깃발을 흔들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우리도 덩달아 눈을 맞으며 그 속에 파묻혀 함께 즐거워했다. 이 나라는 농업국가이면서도 에코(ECCO)라는 세계 최고의 슈즈브랜드까지 보유하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았다. 특히 코펜하겐은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았는데 시가지가 특히 깨끗하고 잘 정리된 도시였다. 더욱이 일주일치 교통권을 끊으면 이 기간 중 버스며 기차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여행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또한 농업국가가 왕정을 확립해서인지 왕궁이 관광명소로 떠 올랐고 잘 정돈되고 풍성한 농촌의 모습 또한 골고루 잘 발달돼 있었다. 특히 코펜하겐의 안데르센동화 공원이라는 티볼리 공원(Tivoli Park)에 갔을 때는 우리가 마치 동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핀란드도 우리에겐 정감이 많이 가는 나라였다. 언어의 순서가 우리와 같을 뿐 아니라 우리처럼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이 많고 사우나 또한 잘 발달돼 있었다. 러시아와 스웨덴 간의 전쟁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나라 답지 않게 사람들 또한 착했다. 내가 예약도 하지 않고 라마다 호텔에 들러 ADB에서 왔다고 하니까 종업원은 두말없이 룸과 사우나까지 안내해 주며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또 공원엔 음악가 시벨리우스(Sibelius) 동상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고 기차를 타고 시골여행을 가기도 좋은 나라였다. 핀란드를 떠나면서 시벨리우스의 CD를 하나 사서 가방 속에 넣고 온 기억도 난다.
 
19세기에 세계를 석권한 스페인 제국의 수도 마드리드는 많은 문화적 유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색 창연한 중앙우체국, 스페인 광장, 태양의 광장 등을 보며 당시 국력을 회고하고 고야의 마야로 유명한 프라도 박물관도 감상했다. 고도인 토레도(Toledo)에 가서는 엘 그레꼬(El Greco)라는 그리스 출신 화가의 그림으로 충만한 성당들을 둘러보았다. 또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빠에야와 해물 요리, 하몬 등에 점심 저녁을 맡기고 아침 조식으로는 까페와 추로스(Churros)를 먹으며 여행을 즐겼다. 또레스 베레야(Torres Bermejal)에서 관람한 정열적인 무희들의 플라멩코도 잊을 수 없는 스페인의 볼거리였으나 투우는 계절도 맞지 않고 너무 잔인한 듯하여 관광을 생략했다.
 
스페인 곁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초입을 지키는 포르투갈의 리스본도 고색이 짙었다. 대서양연해에 위치한 탓에 대구 등 생선 요리가 발전했으며 이에 곁들여 마신 포도주 맛은 일품이었다. 닭을 국가의 국조로 지정해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닭모양의 조각품들이 많았다. 리스본 시가지는 경사가 급하면서도 비좁아 보였으나 일본과의 국교가 빨리 이뤄졌는지 박물관에는 넓게 자리잡은 일본 코너가 설치돼 있어 인상적이었다. 유럽에서 한창 유행인 뽀우자다(Pousadas)는 왕이나 제후의 궁전을 개조한 뒤 호텔로 만들어 관광객을 맞이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ADB이사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이런 도너스 미팅에 편승한 주변국 여행만이 아니었다.
 
ADB에서는 그 당시 자녀들 학비까지 대주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둘째, 그리고 셋째 딸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 특히 방학 때 부모가 있는 필리핀에 올 경우 항공료까지 다 대주었는데 우리 가족은 이 때를 이용해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지역 여행에도 눈길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린 이 기간중 호주 멜버른과 캔버라, 시드니를 여행했다. 이어 뉴질랜드에 가서는 북섬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남섬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와 퀸즈타운까지 다녀올 수 있었는데 이 또한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특히 크라이스트처치에 가서는 도심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마치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고색창연한 성당이며 시내 거리의 가로수와 상가들, 그리고 그 속에 진열돼 있는 상품들까지 너무나 영국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곳저곳 눈요기도 하고 기웃기웃 훔쳐보기도 하며 돌아다니다가 다소 이상하고 생소한 식당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Six Chairs Missing’이라는 식당이었다. 조금은 상상치 못하던 이름이어서 우리 가족은 신비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갔더니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내부는 역시 영국식이었고 겨울 날씨에 걸맞게 음침한 느낌이었다. 메뉴를 보니 수많은 음식 중에 사슴고기와 베이컨에 돌돌 말아 만든 초록 홍합 요리가 생소하여 먹어보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참 맛있었다. 또한 그 이상한 이름의 식당에 이끌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연달아 세 번을 찾아가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에 이르는 길은 렌트카를 이용하여 내가 직접 운전하고 갔는데 가는 길에 큰 도로 한가운데를 어슬렁 거리며 걸어가는 큰 누렁이 소 한 마리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이 소가 큰 엉덩이를 보이며 배회하는 바람에 밤길 차 운전에 많은 지장을 받았으나 뉴질랜드 시골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그래선지 딸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쿡(Cook) 마운틴과 아름다운 호수, 조용한 길가, 그리고 겨울의 차가운 눈 경치를 지나서 퀸스타운 호텔에 이르는 코스도 우릴 흥분시키긴 마찬가지였다. 이어 호텔에서 자고난 다음날 아침 우린 또한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호수와 산 사이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 쌓여 있었는데 황홀한 눈 경치에 우린 한동안 말조차 잃은 채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고 이 광경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한겨울 관광열차로 뉴질랜드의 알프스라고 칭하는 지역을 달리며 보았던 얼음속의 바깥 경치들,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던 그때 그 맛있던 커피맛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또한 하루종일 눈이 펑펑 쏟아지는 퀸스타운 시가지를 혼자서 거닐고 또 거닐며 먼 이국의 정취를 아무도 모르게 즐겼던 일 또한 나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토록 여유롭고 느긋하게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즐긴 것 또한 이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행사진/사진은 내용과 무관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