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7일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갑자기 격상하고 이달들어 6일 피치가 한국에 사상 처음으로 일본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 초이스경제는 국가등급 상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안팎의 관련 사실들을 분석한다.<편집자 주>
 
[4] 노무현과 이명박을 구원한 사나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한국 경제는 3중고 4중고의 엄청난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한반도 최대 난제인 북한의 도발 위협이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였다.
 
또 4대 재벌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로 인해 구속된 틈을 타 투기 자본인 소버린이 막대한 경영권 공격을 감행해 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전염병 사스가 기승을 부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방문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움직임까지 마비될 수 밖에 없었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이른바 ‘동북아 구상’이라는 건 펼쳐 보지도 못하고 벌어진 엄청난 악재 뒷수습에만 매달려야 했다. 여기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한국의 신용등급이 추락하면 봇물 터지듯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갈 태세였다.
 
2003년 4월초, 서울에서 열린 국제금융 토론회에는 김진표 당시 부총리 등 주요 당국자들과 함께 10여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단연 주목을 받은 건 토마스 번 무디스 부사장이었다. 무디스의 한국에 대한 향후 조치에 대해 한마디 힌트라도 얻기 위해 무수한 투자자와 보도진이 집결했다.
 
번 부사장은 “한국과 미국이 대북문제에 협력하지 못한다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한국의 1200억달러 외환보유액 등을 언급하며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일축한 뒤 “SK 분식회계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그의 발언을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내릴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숨넘어갈 듯 하던 한국 경제가 한 숨 돌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재정경제부 당국자들도 그가 입국하던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지난 8월27일은 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의 배심원 평결에서 애플에게 참패를 당한 직후다. 특히 이명박 정부로서는 집권 마지막 해 정책 장악력이 떨어져 가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서울 주식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이 우려됐었다.
 
그러나 증시는 오전 엄청난 약세를 보이다가 마침내 상승세로 이날의 시장을 마감했다. 반전의 계기는 무디스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었다. 이후 피치 또한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는 호재가 이어졌다.
 
무디스의 이번 신용등급 상향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번 부사장이다. 그는 지난 1997년 이래 줄곧 한국을 담당하고 있다. 오래 한국을 맡다보니 그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대표적인 일화가 한국 관계자들이 중국 음식점에서 코스 요리를 마련했지만 짬뽕 한 그릇만 먹고 사라졌다는 사례다.
 
앞서 지난 4월 신용전망 상향에 대해 한국 정부 관리가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자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에 대한 감사라면 받아들이겠다”며 경우를 구분하는 답신을 보내왔다.
 
노무현 이명박 두 정부를 어려움에서 구해 낸 토마스 번 부사장이지만 무턱대고 ‘친한파’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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