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은 일부 당국자의 음모와 모략의 산물, 현대 구조조정도 방해

그냥 묻어두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래도 밝히지 않고 가느니보단 이 기회에 알리고 가는 게 낫겠다 싶은 한 토막의 사건이 있다. 바로 대북 송금에 얽힌 치졸한 비화다.
 
내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0년 6월 초 주중 어느 날로 기억된다. 이날 오후 잦은 회의와 결재시간을 틈내 뭔가를 구상하고 있던 때에 청와대비서실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위원장님, 돌아오는 토요일 8시 조찬가능하시지요?" 친숙한 L수석의 목소리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나는 답했고 ,"그럼 L호텔 B일식부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는 그의 확인 음성이 들려왔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토요일도 정상근무하던 시절이었고 긴급하거나 중요한 일은 통상 새벽조찬시간을 이용해 논의하여 결정하기 일쑤였다.
 
새벽 6시에 집을 나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빵과 커피한잔으로 아침을 먹고 출근하던 평소의 일정을 바꿔 ,약속한 토요일 아침 나는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에 맞추어 조찬장소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서니 난데 없이 산업은행 총재(당시엔 그렇게 부름)가 수석 곁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불청객이 어떻게 여기에 합석하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수석과 업무상 연락하던 차에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겠지하고 흔연스럽게 악수를 나누었다.
 
수석은 태연했다. 나를 급히 만나자고 한 목적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평소처럼 국내외경제상황과 증권시장 동향 등 일반적인 공통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만 건네왔다.
 
이에 나도 ‘그렇다면 산은총재가 식사를 끝내고 먼저 자리를 뜨게 한 후에 나와 별도로 긴요한 얘기를 나누자는 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찬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수석은 총재더러 얘기를 꺼내라고 하면서 위원장께서 이건을 잘 도와 주셔야겠다고 화두를 돌렸다.
 
그러자 총재는 선뜻 다음 주초 현대에 4000억원을 대출해 줘야 하는데 나더러 특별 승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몹시 불쾌했다. 아니 어리둥절했다. 나는 재무부 사무관시절부터 금융기관에 대출청탁을 하는 것은 금기사항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과 대출은행의 두취가 짜고 금감위원장에게 대출청탁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시시한 얘길 하려고 바쁜 사람을 조찬에 불러냈단 말인가?!’ ‘참 웃기는 사람들 이군!’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한 일이라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대출 승인 건 같으면 자행의 여신회의에서 하면 되는 것이고, 금융감독위원회의 특별승인사항이라면 금감위에 서면 신청한 뒤 위원회에서 검토하여 승인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사안이었다. 그런만큼 이번 건은 금융감독위원장이 독단으로, 그것도 사무실도 아닌 식당에서 식사 중에 결정할 사항이 아닐뿐더러 특히 현대는 구조조정 중에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특별승인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이 친구들이 무슨 생각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화를 낼 수도 없고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도 수석이나 총재나 금융을 잘 몰라서 그러는거겠지 하는 쪽으로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으나 그래도 답은 분명히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마디 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듣지 않은 것으로 할 테니 그쪽에서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은 것으로 하시오. 아무리 그 대출이 긴급하고 중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위원회에 정식으로 상정하여 검토 되어야 할 것이며 위원장인 내가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그렇게 아시오"
 
나는 불쾌하고도 황당한 기분으로 조찬 장을 떠났다.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 후 그 특인 건은 금감위에 승인요청된 바도 없고 검토 한 바도 없었다. 그런 채로 나는 다음 개각 시에 뜻하지 않게 도중하차를 하였으며 개각의 이유가 무엇인지 석연치 않았으나 (통상 임기직은 개각대상에서 제외됨) 여하튼 무겁고 힘들었던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산업은행이 비공식적으로 나에게 특인요청코자 했던 그 자금은 대북송금자금의 일부분이었고 그 건은 그 후 특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훗날 뜻하지 않게 이건과 관련하여 특검에 소환되어갔다.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나는 얼마 전 겪었던 나라종금사건을 연상하였다. 나의 결백만 믿고 변호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소환에 응했다가 졸지에 억울한 누명을 썼던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특검에서 L수석과 L총재(그는 이건을 잘 협조했고 모 가신의 추천으로 내후임에 발탁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음)는 하나같이 입을 맞추어 그 건을 내가 특인해주어 송금재원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특검은 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나를 소환했던 것이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억울하고 답답하였지만 이성을 되찾아 사항별로 논리정연하게 차근차근 답변하였고 특검은 결국 내 설명을 납득하였다. 그들은 수석과 나를 대질심문하고자했고 나는 흔쾌히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반대로 L수석은 이를 극구 거절함으로써 대질심문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특검은 종료되었다.
 
그 당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대북송금이 필요하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섰다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얼마든지 송금이 가능한 문제이겠으나 다만 그 재원은 기업자금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정부예산이나 아니면 수출입은행이 관장하는 해외협력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으로 하면 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진대 왜 그들이 그런 절차와 방법을 제쳐 놓고 기업자금을 대북송금재원으로 활용키로 대통령께 보고 하였는지 ,아니면 시간이 급박하였거나 또는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는 말 못할 특별한 사유(예컨데 대북송금이 남북화해라는 대의명분이 없다든지, 국민이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무슨 사유가 있다든지하는 등)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렇게 중차대한 국사를 처리함에 있어 그들이 취한 행동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아쉽고 안타가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또한 기업자금으로 송금키로 결정했다면 수석과 총재가 알아서 자기네들 끼리 짜고 하면 되는 것이지 왜 하필 금감위원장인 나까지 포함시키려고 하였던 것일까?
 
훗날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때 벌써 다음 개각 시 내후임으로 L총재를 내정해놓고 나서 대북송금의 책임은 물러날 나에게 몽땅 뒤집어 씌우려는 계략인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만약 잘못 판단하여서, 아니면 내가 오래자리를 보존하겠다는 욕심에서, 그들에게 동조했더라면 나는 그나마 편히 자리를 물러나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지금도 머리끝이 섬뜩함을 금할 수 없다.
 
한편으론 오직 국가를 위하여 정의롭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소박한 꿈은 고도의 정치력(?)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구나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마치 나의 어리석음을 세상이 비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수석이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어 그의 성향이나 판단이 곧 정부의 그것으로 대통령께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내 생각은 타당성을 갖게된다.
 
공적자금으로 수행해야 할 일을 개인기업자금으로 충당한다면 그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정부에 기대하거나 아니면 그에 상당하는 특혜를 바라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단언 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기부문화의 성숙도가 한참 뒤떨어진 한국에서 기업의 비용은 몇 배의 수익을 바라고 지출되거나, 아니면 기업의 안전을 담보하려는 보험료 성격으로 지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개인기업자금을 공적자금으로 써야할 부분에 대체하여 활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돌이켜 보건대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가 정부에 그렇게 강력히 저항하던 배짱이 대북송금재원을 자기네가 제공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가?
 
훗날 다시한번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공직자가 원칙에 따라 국가를 위해서 소신껏 일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또 공직에 입문할 때 스승께 배워서 터득한 신념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론 우직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도리어 그때그때 현실에 타협하고 소신과 원칙을 바꾸어가는 처신이 일신의 안일과 출세에 도움도 되고 신축성 있는 유능한 인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요즈음엔 비일비재해 서글플 때가 많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도통 흐려져서 어지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또다시 그러한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신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결정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3년 임기직인 내가 아무런 과오나 하자없이 구조조정이 한창 추진되던 중요한 시기에 임기와는 무관하게, 또 내가 원하는 대로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멋있게 완결하지 못하고 갑자기 도중하차하게 된 점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사건을 계기로 금융에 별 전문성을 갖추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내가 물러나는 금감위원장직을 돌연 승계하게되었는지를 궁금해하던 항간의 숙제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들이 주위에서 많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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