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자리, 외국인에게 양보하는 이유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TV에서 방영중인 ‘글로벌 아빠 찾아 3만리’에서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소개됐다.

그의 아내와 두 딸이 방송국의 도움으로 그를 찾아왔다. 남자가 다른 일로 병원을 찾았는데 그의 가족이 깜짝스런 등장을 해 가족이 몇 년 만의 상봉을 했다. 병원 대기석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로 축하한 장면이 특히 훈훈했다.

이 남자는 고국인 캄보디아에서는 교사였다. 그의 아내는 지금도 학교선생님인 지식인 부부다. 그러나 교사부부 수입으로는 살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공장 일을 하며 버는 돈이 훨씬 커서 지금 그는 이렇게 생이별을 하며 살고 있다.

전주에는 스리랑카의 남성이 이 프로그램 덕택에 제주도에서 아내와 두 딸을 만났다. 낳자마자 고향에 두고 온 둘째 딸은 아빠 얼굴을 처음 보게 됐다. 그는 앞으로 두 딸이 시집갈 때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광어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호텔 요리사였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공장일 또한 세계 여러 가족을 돌볼 수 있는 훌륭한 일자리가 됐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이런 좋은 일자리는 왜 이제 외국인들이 와서 일하고 있을까.

TV 프로그램 '아빠찾아 3만리'에서 캄보디아 출신 남성이 공장 작업중 아픈 무릎을 쉬고 있다. /사진=EBS 화면캡쳐.
TV 프로그램 '아빠찾아 3만리'에서 캄보디아 출신 남성이 공장 작업중 아픈 무릎을 쉬고 있다. /사진=EBS 화면캡쳐.

철모르는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무조건 험한 비난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는 만약 외국인노동자들이 없다면 경제활동이 그냥 마비될 지경이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의 일자리가 남아도는 것도 아니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대란이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들의 일자리는 부족한데, 산업현장에서는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한국 취업희망자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인 수요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대학졸업자, 즉 학사(Bachelor)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1990년대 이후 대학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런데 국가경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일자리가 학사 학위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대학을 나오다보니, 구직자들은 “내가 대졸인데 이런 데서 일하게 생겼냐”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차라리 좀 더 쉬면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기로 한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 또한 자식이 험한 일 하는 걸 보느니 ‘내가 좀 더 먹여 살리겠다’는 심정을 버리지 못한다.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생전에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이 공부만 한다고 하면 50살까지도 키울 사람들”이라고 말했었다. 참으로 핵심을 지적한 한마디다. 전 총재의 두 아들은 모두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진작부터 졸업만 하면 한 푼도 도움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신의 경력을 준비해 실천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세월이 너무 길어지면, 더욱 큰 경각심을 갖게 된다. 해외 취업 열풍은 이래서 생겨났다. 마침 이웃나라인 일본이 한국과 정반대로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것이 한 가닥 활로가 됐다.

우리나라 일자리에 외국인이 오고, 우리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순환이 순조롭게만 이뤄지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이렇게 도표를 그려서 화살표를 연결하듯이 바로 해결되는 법이 없다.

해외취업 역시 가봤더니 농장의 가공육을 만들거나 다른 허드렛일이었다는 사례도 자주 들린다. 이런 일이라면, 지금 한국의 공장에 외국인들이 와서 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기왕 막노동을 할 거면 뭣하러 집 떠나 가족 떠나 바다도 건너간단 말인가. ‘폼생폼사’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면, 그냥 남들한테 ‘해외취업했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맛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은 본인의 경력개발이란 점에서도 긴 안목을 필요로 한다.

국내 일자리에 외국인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다보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원활한 실현에도 문제가 생긴다.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린들, 고용주의 고통만큼 국내 고용창출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임금상승에 따른 소비 진작효과도 대폭 축소된다.

이전 칼럼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철학만큼은 한국 경제의 가려운 곳을 긁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시장의 메카니즘을 중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부가 나서서 특정수준으로 급격히 올린 최저임금을 강요하는 방식은 시장 메카니즘을 방해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지금 현실에서는 한국보다 외국인노동자들의 고향에 소득주도 성장효과를 나눠준다. 이 문제에 대해 장관 한 사람이 “외국인노동자라고 해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자리가 생겨도 뜻에 안 맞아 외국인들에게 양보하는 이런 세태에서 최저임금 상승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사실, 한적한 교외의 공장 일을 마친 노동자가 퇴근 때는 넓직한 주차장에 세워둔 중급 이상의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매우 바람직하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보상을 받아서, 퇴근 후나 주말에 자기만의 시간을 멋지게 누리는 모습이다.

한국은 지금 이 고리가 막혀있다. 저마다 이 공장의 부장급 이상 간부만 하려고하지 기계를 돌리려는 사람이 없다.

1980년대만 해도, 정말 돈을 벌고 싶으면 중고등학교만 나와서 동대문 포목상을 찾아가 도제정신으로 일하라는 교훈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이런 얘기를 어디가 꺼내지도 못한다.

일단 대학을 나온 것이 아니면, 그게 인생이 아니다. 배우자를 만날 생각도 말아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졸자 수요가 많은 건 아니었다. 내 자식 대졸자 만들겠다는 수요가 많았을 뿐이다.

우려스런 모습은 이미 15년 전부터 목격했다. 아주 생소한 대학은 아니고 몇 년 동안 들어본 적이 있는 학교의 교수인데 신입생 모집의 책임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운영된 대학에서 과연 학사 학위를 갖췄다고 평가해 줄 만한 인재를 키워내는 지도 짚어볼 일이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새로운 주력수출품이 대졸실업자’라는 기사를 최근 보도했었다. 국내 일자리 부족의 해결책으로 대졸자들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과연 외국기업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육을 받고 가느냐는 문제도 있다.

소득주도 성장 철학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최저임금보다 대학 구조조정 정책과 더 밀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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