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기만 해서는 안되고 뭔가가 더 필요하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는 1년에 한 번 연어 떼를 기다리는 곰들의 심정으로 사진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동면을 앞둔 곰들은 산란, 그리고 생의 마감을 위해 돌아오는 연어를 지금 충분히 포식해야 한다. 그런 곰들에게 연어가 아닌 로봇물고기나 다른 것이 자꾸 잡히게 되면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사진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 연예전문 매체인 스타의 표현처럼 "판빙빙이나 궁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름도 모르는 여배우가 레드카펫을 차지하고 행사를 지연시키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장시간 대기하는 입장에서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이번 칸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반가운 뉴스와 함께 마무리됐지만, 첫 뉴스는 중국 여배우가 너무 시간을 끌어 레드카펫에서 끌려나오다시피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스타는 "당신이 판빙빙이나 궁리가 아니라면 빨리 지나가라는 메모가 인기사극에서 궁녀로 나온 쉬얀페이에게는 전달이 안됐는지도 모른다"고 촌평했다.

칸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의 실황중계 장면. /사진=칸 영화제 유튜브 동영상 화면캡쳐.
칸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의 실황중계 장면. /사진=칸 영화제 유튜브 동영상 화면캡쳐.

쉬얀페이 뿐만 아니라 배우인지도 불확실한 여러 중국 여성들이 이번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1700만~5000만 원 가량의 거금을 내면 영화제에 초청받지 않아도 레드카펫에 참여할 수는 있다. 2년 전, 이런 식으로 등장한 여성의 5성 홍기 드레스가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돈을 내고 레드카펫에 나타난 경우라면, 곰을 짜증나게 하는 ‘가짜 연어’하고는 사뭇 처지가 다르다.

권위 있는 문화행사가 상업적 행위를 한다는 비판의 소지가 있음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당연히 운영비 마련이 절대적 이유가 된다. 이렇게 ‘레드카펫 온리’ 티켓을 팔아 돈을 마련할수록 다른 거대스폰서에 매달려야할 필요성을 낮출 수 있다. 말하자면, 돈을 낸 만큼은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 ‘고객들’인 것이다.

칸 영화제 주최 측이 유투브에 올린 레드카펫 동영상은 이날 등장한 무수한 배우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극히 일부 인물들에게만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주최 측이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저 멀리 등 뒤로 이런저런 드레스 또는 양복을 입은 여성과 남성들이 지나간다.

야유가 있었더라도 주최 측의 동영상에서는 들리지도 않는다.

수 천 만원이나 낸 것을 생각하면 이걸 휭하니 지나가자니 피눈물이 나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 누구야" 수군대는 사람들 앞에서 소걸음을 했다가는 그 시간부로 고국의 인터넷에서 "나라망신을 시킨다"는 비난몰매가 쏟아지기 시작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만다.

한국에서는 한 때 이것보다 완전히 ‘거저 먹는 마케팅’ 논란이 벌어졌었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때다. 길거리 응원을 하는 여성의 미모가 좀 눈길을 끈다싶으면 곧 바로 "축구응원은 관심도 없고 연예계 데뷔하려는 것"이라는 의혹이 쏟아졌다. 이 의심을 피하는 길은 연예계와 담 쌓은 인생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식의 ‘바이럴’ 마케팅은 대중 예술인이 되려는 목표에는 전혀 쓸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미모도 이제는 합당한 전후관계 설명이 함께 따라오지 않으면, ‘비호감’과 ‘까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합당한 전후관계 설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존중 또는 존경할 만한 이유다. 예쁘기만 할 게 아니라, 감동이 있으면 더 쉽게 와 닿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그게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화제 주최측이 달라붙어 장시간 인터뷰도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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