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한국은행 독립, 금리인하도 스스로 결정할 때 이뤄진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금융통화위원의 소수의견은 한국은행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다. 100번을 들어도 전혀 틀린 데가 없는 말이다.

한국은행이 3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1.75%로 유지한 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주열 총재가 한 발언 가운데 가장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 때 한국은행 금통위에는 금리정상화를 강조하는 총재와 소수의견 남기기를 훈장처럼 여기는 금통위원이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이 때부터 소수의견을 한은의 신호처럼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소수의견에 정부의 강한 입장이 담겨있는 것으로도 분석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7명 금융통화위원 가운데 3명 이하 금통위원의 개인의견일 뿐이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인하 소수의견을 남긴 조동철 위원이 누가 요구한다고 해서 소수의견을 남길 사람도 아니다.

그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할 때, 금리인하를 강조하는 원장이 있었지만 그는 원장의 질책을 받아가며 금리인상을 주장하던 시절도 있는 사람이다.

조동철 금융통화위원. /사진=뉴시스.
조동철 금융통화위원. /사진=뉴시스.

경제학자를 최근 3~5년만의 일로 비둘기다, 매다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빈틈이 많은 접근방법이다. 학자의 모든 논문을 살펴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 대신 한국 경제가 오랜 세월 여러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가 어떤 입장을 펼쳐 왔는지, 어떤 인품을 보여줬는지를 확인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어떻든 금통위원 소수의견의 본래 의미로 보나, 조동철 위원의 그동안 활동으로 보나 31일의 소수의견을 절대로 ‘팀 플레이의 일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주열 총재의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소수의견"이란 발언은 "금리 올라가면 채권가격 내려 간다"는 말처럼 하나 틀린데 없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총재의 이날 다른 발언은 전부 틀린 것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점에 따라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고 또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뭐가 맞았다고 결론 내릴 수 없는 것들이다.

금리인하에 대한 발언이 그렇다. 이 총재는 "지금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해 보면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만한 상황이 아직 아니다"고 밝혔다.

금통위의 성명서인 통화정책방향은 소비자물가가 바닥을 치고 반등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성장률도 함께 오른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한국 경제는 지난 1분기 중 마이너스 성장의 충격에 심각하게 저하된 체질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발표를 계기로 사소한 해외뉴스에 원화환율이 다른 환율들보다 급격히 오르는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서 국민과 언론이 한은과 함께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다. 한은이 정부요구에 휘말려 무작정 금리를 내렸다가 부동산과열이나 주식거품을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주열 총재는 앞선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책임의 일부를 지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이나마, 한은이 과도한 통화완화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긴 하다.

그런데, 만약 한은이 ‘금리를 내려야 할 시점’에 대한 독자적 결정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 또한 한은의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하도 간섭을 많이 받은 중앙은행이다보니 그런 증상에 대한 우려는 진작부터 들 수밖에 없다.

정부 간섭이 별로 심하지 않아서 견딜만 하니 안 내리고 버틴다는 식의 통화정책으로는 진정한 중앙은행 독립을 실현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은행으로서는 간섭을 받아도 어떤 간섭을 받고 있는지 헷갈리는 측면은 있다. 1년 전만 해도 청와대 관계자와 다른 경제부처 장관, 거기다 국무총리까지 중앙은행에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졌었다.

금리를 올려할 때와 함께 내려야 할 때 역시 중앙은행 스스로 역량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한국은행의 독립이 실현된다. 이 역량이 확인되지 않으면 일부 재무 관료들의 "어떻게 그 사람들 믿고 맡겨요?"라는 고약한 입놀림이 지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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