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앞에 평등해야 법질서 수호되고 길게는 경제에도 긍정적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칼럼] 일부 경제담당 기자들 사이에선 가끔 화두가 되곤 하는 말이 있다. "기자들이 재벌 걱정 하는 것 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새삼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최근 한국 경제계를 걱정스럽게 하는 재벌 관련 뉴스가 부쩍 늘고 있어서다.

코오롱 그룹 계열의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성분 파장, 한화그룹 계열사의 연이은 안전사고 발생, 한진그룹의 오너 갑질 논란에 이은 상속 이슈, 삼성그룹 계열 분식회계 의혹 관련 검찰 수사 확대 등 재벌관련 악재가 줄을 잇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선 "가뜩이나 한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인데 재벌 악재까지 연이어 터져 나라 상황을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특정 기업 악재에 대해 "경제도 나쁜데 주요 기업까지 궁지에 몰리면 어쩌냐"는 논조를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일부 언론은 "아무리 큰 재벌이라 하더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논조로 맞서기도 한다. 일부 언론은 재벌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보도 자체를 꺼린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재벌 악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주요 언론의 특정 재벌관련 색깔도 극명하게 대별되는 요즘이다.

재벌이 언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언론사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특정 재벌의 영향 밖에 있는 언론도 있을 것이고 특정 재벌에 맞서는 언론도 있을 것이다. 재벌의 영향은 받지만 제한적으로 할 말은 하는 언론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정 재벌을 감싸려는 듯한 언론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종종 재벌 총수나 오너 일가의 재판결과 등이 일반인과 다르게 나온다는 판단이 들곤 할 때 ‘유전무죄’라는 말을 하곤 한다. 주요 재벌 재판이나 수사 등이 진행될 때 한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보도를 접하기도 한다. 과거 한 대형 재벌 고위관계자 휴대폰에는 일부 고위 언론인들의 부적절한 소통 내용이 들어 있어 파장이 일기도 했다.

불법 의혹을 받는 대기업이나 재벌 총수가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거나 유죄를 받을 경우 우리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대기업이나 재벌 오너도 잘 못 한 일이 있으면 응당 수사도 받고 응분의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그것이 우리 경제에 일부 악재가 될지는 몰라도 길게 보면 그게 우리의 경제를 더 강하게 할 것이라고 본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사진=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사진=뉴시스

과거 우리 대형 재벌의 오너가 구속되자 일부 외신이 "단기적으로는 악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평을 한 것으로 들었는데 기자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 외신은 재벌 총수 유죄는 경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기억난다. 

어느 기업이 룰을 잘 지키고 신뢰를 얻을 때 그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 믿음을 줄 수 있고 나아가 고객들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향력 좀 있다고 해서 대기업이나 오너들이 잘못한 의혹을 받고도 일반인 보다 약한 수사를 받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인상을 줄 경우 그에 대한 손가락질은 늘어날 것이다. 기업의 덩치가 크다고 해서, 대형 재벌의 경영진이라고 해서 ‘유전무죄’라는 인식 속에 계속 남아있다면 그것은 재벌 전체의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뿐더러 그 나라 전체의 법질서의식을 의심케 할 것이다. 

일부 선진국에선 기업인이 법을 어길 경우 수십년 형을 선고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나라 경제가 무너졌는가. 오히려 전체 기업인들이 법을 더 잘 준수하면서 경제 강국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우리 재벌 중엔 이런 저런 악재로 고전하는 곳이 많다. 어느 재벌은 제품 사기 의혹으로, 어느 재벌은 각종 안전사고 발생으로 어려움에 닥쳐 있다. 일부 재벌 총수는 과거 정부 때의 잘못으로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다. 어느 재벌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있는 그대로 수사하고, 있는 그대로 재판하고, 있는 그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본다. 법 앞에 권력자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인이든, 일반인이든 모두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요 권력자, 주요 기업이 앞장서 법을 지킬 때 그 나라의 법질서는 바로 잡힐 것이고, 경제도 더 안정될 것이라는 게 이 글을 쓰는 기자의 확고부동한 생각이다.

여러 의혹이 발생했는데도 검찰 수사 등이 시작되면 "경제도 막중한데 꼭 그래야 하나"하는 방식의 대응은 이제 과거 수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 기업 건드리면 경제는 어떻게 하라고?"하는 식의 대응은 국민 앞의 오만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 또는 거기 잘못 건드리면 나라 경제가 큰일 난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더 이상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자세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수사 당국이나 재판 당국도 여론의 눈치나 보는 그런 수사나 재판 결과가 더 이상 나오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