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일본인 지기도 얻는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내 일본인 학우는 나와의 대화에서 일본의 군주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살짝 내보인 적이 있다. 냉철한 판단에서 비롯되는 의견이 매사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보니 건너편에 이 친구가 나와 있었다.

내가 있는 쪽의 도로에는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중국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이 피켓을 들고 있었고, 우리 앞에는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낀 미국 안전요원들이 도로로 내려서는 것을 막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일본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우리 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일본임금을 비판하고 항의하는 시위 중이었고, 일본사람들은 맞은편에서 자기나라 국가원수를 환영하는 것이었다. 일본인 가운데 서 있는 내 친구를 보게 됐다.

나중에 이 친구는 이날 나를 봤었다고 특유의 쑥스러워하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

생각해보면, 나라가 일본인 것을 떠나 자기나라 국가원수가 왔을 때 "난 저 사람 반대해"라면서 다른 데 놀러가는 사람보다, 반대는 해도 일단 이런 자리에서의 예의는 표시하는 사람이 친구로서 훨씬 믿기 편할 것이다.

20대가 거의 지나갈 무렵 말도 서툰 곳에서 일본사람과 얘기한 것도 평생 처음이었다. 뭔가 나를 대하는 말투가 프로야구 관중석의 상대팀 응원석에 앉은 사람처럼 대단히 조심스럽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1년 반 지내는 동안,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절대로 남한테 폐를 안 끼치려는' 일본사람들의 심성을 접하게 됐다.

4년 후, 미국의 반대편에 가서 1년을 지낸 적이 있다. 여기서 또 다른 일본인 친구를 만났다. 행동거지와 심성이 너무나 비슷해 4년 전의 그 친구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심지어 그릇의 음식도 절대로 쌀 한 톨 남기는 법이 없는 것까지 닮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미국과 일본사람들이 먹다 남는 음식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반대다.

연락이 끊기고 15년 후 페이스북에서 가장 먼저 찾아낸 사람이 맨 처음 미국에서 만난 일본친구였다. 페이스북을 하는 모습도 그의 성격과 공부하던 스타일답게 전문분야인 금융의 좀 깊이 있는 외신들을 차곡차곡 올려놓고 있었다.

딱 한번, 그가 약간 격앙된 감정을 드러낸 것이 중국시위대가 현지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을 공격하던 2012년이다.
 

'열 길'이 아니라 '백 길 물속' 같은 일본사람의 속마음

어른들은 일본사람들에 대해 "속이 양파와 같아서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알면 알수록 친절한 겉과 달리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서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면, 대다수 일본사람들은 정말 극한의 인내심으로 평생의 하루하루를 친절한 모습으로 보내는 것이다.

또 한 편으로, 생전의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명분을 중시하고, 일본인들은 의리를 중시한다"고 평한 적이 있다.

정치권에 몸 담았던 어떤 사람은 유력정치인 A의 일본방문을 준비하면서 차세대 주요 일본정치인들과의 만남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A가 국내 급한 일이라는 이유로 직전에 일본방문을 취소했다. 상당히 난처해진 이 사람은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비로 일본을 방문해 사과를 하러 다녔다. "너희 나라는 항상 이런 식이다"라는 거친 항의도 받았다. 그런데 일본정치인 B는 이 사람에게 한국 쪽 파트너가 약속을 깬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렇게 사과까지 온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B는 훗날 짧게나마 일본정치의 최고위직을 맡았다.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수여된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 그는 일본임금 암살을 시도한 박열과 가네코 부부를 변호하는 등 많은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변호했다.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수여된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 그는 일본임금 암살을 시도한 박열과 가네코 부부를 변호하는 등 많은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변호했다.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매사 빈틈없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안 끼치려는 일본인들이지만, 이들의 나라는 국민개개인의 성격과 너무나 다르다. 일본이란 국가가 타국에 폐를 끼치는지 안 끼치는지는 한국역사가 산증인이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덜렁거리는 국민들의 성격이 국가의 성격으로도 자주 나타난다는 한탄을 금할 길이 없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평생을 정진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성 자체에서는 누구를 괴롭히고 수탈하는 근성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서 표를 줘서 내세우는 정부는 끊임없이 자기 잘못을 숨기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서양 사람들 중에는 "한국은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고 불평한다"는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흔히 눈에 띈다. 일본이 위안부 개입을 인정한 자체가 없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본정부의 주장을 녹음테이프처럼 반복한다.

왜 이런 개개인의 일반적인 성격과 국가의 성격이 다를까.

여기에 대해 나는 일본을 발전시킨 사람과 무너뜨린 사람의 두 종류가 갈리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본의 성장기적을 만든 사람들과 자멸시킨 사람들

19세기, 한국과 중국 모두 외세와의 충격적인 접촉에 정신을 수습 못하고 있을 때 유독 일본만 치밀한 학습능력으로 열강의 한 축으로 뛰어올랐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일시적 우위를 일본은 첫 번째 한국, 두 번째 중국을 상대로 휘둘렀다. 놀라운 성장세 속에서 우선 가깝게 눈에 띄는 상대를 정복하자는 제국주의자들이 일본을 장악했다.

그러나 뛰어난 함선과 국력을 갖추고 나니 망망대해로만 알았던 태평양에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이곳으로 진출해야겠는데 철천지원한을 지닌 한국과 중국인들이 일본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을 피할 길이 없었다. 작은 싸움을 위해 더 큰 싸움을 벌여야 하는 악순환 속에 일본제국주의는 처참히 패망했고 일본국민들에게 혹독한 고통을 안겼다. 만약 일본이 20세기 초 한국의 신뢰를 얻어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면, 지금의 태평양 판도는 어떻게 돼 있을까.

일본에는 남달리 차분한 대다수 국민을 모아 철없는 자신의 맹동주의를 누리는 정치가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 이 정치인들은 행정과 사법의 독립을 포함하는 3권 분립은 일본과 같은 선진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여전히 19세기말처럼 낙후된 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란 시각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다. 한국의 3권 분립 또한 '독재정권의 핑계'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본은 매번 한국과의 문제를 민심과 동떨어진 정권과의 협잡으로 해결해 왔고, 그 버릇을 지금도 못 버리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1심, 2심 판결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심판을 내려왔는데 그 긴 세월 아무조치도 안하고 한국의 정권이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만 바란 건 일본 정부다.

일본 경제가 힘찬 성장기를 누리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결 여유로운 민심이 일본 내 극우의 기승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부실이 일본경제를 강타한 1990년대 이후 예전 같은 일본경제 신화는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기간 한국은 최빈국을 탈피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는 올해 일본이 4만1000 달러로 26위, 한국은 3만2000 달러로 30위라는 자료가 검색되기도 한다. 한국보다 월등히 잘산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일본인들이 경계심도 갖게 된다.

냉전시대,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강요되던 시기에 경제력이 훨씬 떨어지던 한국에 대해 일본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일종의 피해의식도 저들은 갖고 있다. 이를테면, 1979년 제2차 석유파동 때 대체공급지인 인도네시아의 일본수출 석유를 한국이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일부 한국으로 돌렸다든지, 제5공화국 집권 초 안보를 이유로 일본의 60억 달러 경제협력을 강요한 것 등이다. 그보다 훨씬 전 자신들의 침략으로 한국이 분단까지 된 역사는 쳐다보려 하지를 않는다.

문제가 된 전범기업들의 징용공 착취는, 어떻든 이들 기업이 한국에 진출할 때는 오늘날의 배상문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기업경영의 예측 가능성 차원에서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한국시장의 투자 안정보장과 관련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물질적 이해가 전쟁범죄에 대한 법의 옳고 그름 판단 자체를 뒤바꿀 수는 없다. 다만 외교와 관련된 것이니 행정력의 차원에서 최대한 조정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진정한 '극일'은 두 나라 양식을 갖춘 사람들 모두의 승리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은 새로운 성향을 가진 세대들이 나타나 옛날 일에 얽매이는 걸 질색하는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나누고 있는 최대의 언어는 K팝이다. 뉴스에서 어른들은 한일관계가 어쩌구 떠들어도 이 친구들한테는 새로 나오는 방탄소년단 노래가 더 중요하고 자신도 제2의 트와이스 사나가 되고 싶다는 성향이 더 강하다.

그래도 때가되면 아무리 어린친구들도 자기나라 방식의 애국을 하게 된다. 그건 어느 나라나 국가의 기본요건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궁극으로 갈등에서 승리하는 길은 상대방 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이 올바른 양식에 좀 더 기울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일본의 핵심부품 수출금지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분석들이 모두 맞는지는 좀 지켜봐야 될 것 같다. 워낙 중구난방이 많아서다.

그러나 한 가지 정말 맞는 말은 있는 것 같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중국인들이 일본기업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위협적 모습을 한국인들이 보여서 반대급부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본심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전후의 모든 정황이 이런 분석과 맞아 들어간다.

한국에서 K팝 스타가 되려는 젊은이들은 "한국은 무서운 곳"이라는 어른들의 걱정을 "가보니 안그렇던데?"라고 일축한다고 한다.

일본을 이기는 진정한 길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이 더욱 정의로운 생각을 공유해 함께 이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내에서 '나만 애국자'인척 하고 싶은 사람들의 충동주의는 철저히 근절할 필요가 있다. 사실 충동주의자들과 요즘 소위 얘기하는 '토착왜구'는 결과적으로 한통속이다. 둘 다 아베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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