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식 "현대重-대우조선 기업결합 구조조정 전제로 조건부 승인 가능성"

31일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 앞. /사진=뉴시스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 앞.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임민희 기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될 경우 중복 인력 및 설비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중공업과 KDB산업은행 측은 그동안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왔지만, 향후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전제로 조건부 승인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15일 재벌특혜대우조선매각저지전국대책위원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현대중공업-대우조선 기업결합이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진단했다.

박 전문연구원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이 합병할 경우 이들의 주력 선종 중에서 대형 유조선과 대형 LNG운반선의 수주잔량이 총 수주잔량의 50%를 상회한다"며 "이는 앞으로 진행될 국내외 기업결합심사에서 독과점으로 인한 수요자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기업합병에 대한 각 국가별 공정거래위원회 및 관련 기구들에서 결합을 불허할 가능성은 대체로 낮은 편"이라며 "상식적으로 합병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굳이 타국 기업들간의 합병을 불허할 경우 향후 자국 기업들 간의 합병 건에 보복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전문연구원은 "그렇다고 시장점유율 50%가 넘어 자국의 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없는 만큼, 현실적으로 조건부 승인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경우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살펴보면 조건부 승인과 승인이 85% 이상을 차지했다. EU는 현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히는 곳이다. EU는 기업결합으로 인해 특정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상회할 경우 조건부 승인을 하는데, 이때 조건은 거의 대부분 설비·자산의 일부 또는 전부 매각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지난해 10월 독일 린데 아게와 미국 프렉스에어의 합병을 심사한 결과 국내외 가스 시장에서 경쟁을 일부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두 회사가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산소·질소·아르곤의 토니지와 벌크 사업과 관련한 자산 중 한쪽 기업의 자산일체를 매각하도록 명령하면서 조건부 승인을 결정한 바 있다.

박 전문연구원은 "조건부 승인에서 '조건부'는 50% 이하로 시장점유율을 낮추기 위해서 설비축소나 인원감축을 요구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따라서 현대중공업이 내년 초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결합심사 결과에서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향후 설비 감축 방식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현대중공업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다고 현재 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내외 기업결합심사에서 조건부승인의 내용을 고려하면 내년 이후에 기업결합심사 통과를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변할 것이 자명하다"며 "현재 두 업체의 총 22개 도크와 3163만3000DWT의 생산능력 중에서 어느 정도의 도크 폐쇄 조건을 통해서 생산능력을 감축을 요구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문연구원은 또 "설비를 감축할 경우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며 "다만 설비(도크)축소의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사업장별 고르게 감축할 것인지, 대우 또는 삼호중공업에 집중해서 감축을 진행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조선산업의 시급한 현안으로는 중형 조선업체 정상화를 꼽았다. 그는 "한국 조선산업에서 빅3의 빅2로 재편,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시급히 서둘러야만 하는 현안은 아니다"면서 "이보다 전체 한국 조선산업을 아우르는 관점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총체적인 발전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일 경쟁 관계인 세계 조선산업에서 한국에 적절한 규모의 대형-중형 조선업체들의 공존이 필요한 만큼, 오히려 중형 조선업체들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폈다. 전 세계적으로 신규 선박 건조시장은 중소형 선박이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최근 선박 대형화 추세와 병행해 중소형 피더 컨테이너선, 중소형 탱커와 LNG운반선 수요가 함께 성장 중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문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특혜성으로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을 떠넘기는 방식의 대형 조선업체들의 재편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대우조선에 대한 성급한 매각시도는 전체 조선산업에 대한 고려보다는 산업은행 관계자들의 (단기) 성과주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침했다.

아울러 그는 "경쟁상대인 중국과 일본 정부는 이미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산업 차원에서 거시적인 대응은 사실상 전무했다"며 "국내 조선산업 밀집 지역 지자체와 조선산업 노사를 포함한 업종 차원 협의체나 위원회를 구성해서 장기적인 산업-고용정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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