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모두가 적"이란 발상은 왜 위험한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의 시민운동은 살인도 불사하는 제국주의 침략과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독재자들의 역공에 또 다시 민주주의가 유린된 불행한 사태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그치지 않는 신심을 모아 거듭해서 불의를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비폭력을 일관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1919년 3.1 운동,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2016년 박근혜 탄핵 요구시위가 이런 빛나는 역사의 자취다. 놀라운 역사의 전진과 함께 '혁명' 또는 '항쟁'의 엄중한 어휘가 있던 자리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시위'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시행착오도 있었다. 지나친 열정이 오히려 침략자들에게 빌미가 돼 더 큰 불행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전 국민이 깨달아 국민의식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1980년 봄의 민주화운동이 다소 격렬해진 틈을 타 신군부 독재정권은 대규모 학살범죄를 저지르며 정권을 차지했다.

이 교훈은 이후의 모든 시민운동에서 주체들이 절대적으로 대중이 자제력을 잃지 않도록 철저히 선도하고 있다.

요즘 홍콩의 민주주의 요구 시위를 보면서, 일부에서는 이런 교훈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또 다시 시민운동이 크게 결집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안가기다.
 

일본제품 불매운동 포스터. /사진=뉴시스.
일본제품 불매운동 포스터. /사진=뉴시스.

국가적으로 취하는 보복조치는 여러모로 득과 실을 따져봐야 하지만, 시민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불매운동은 참으로 장점만 가득하고 해로운 점은 전혀 없다. 국민들의 깊은 의식에서 비롯돼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일을 못하게 막을 길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시민운동이 그렇듯, 여기도 일부의 극단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본뜻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시민운동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이 그런 어리석음을 허용할 까닭이 없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4일 시민들은 중요한 불매운동 수칙을 공유하고 있다. 참으로 적절한 때에 천금같이 귀중한 원칙을 담고 있다.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도 남을 원칙들은 이런 제안을 담고 있다.

첫째, 이미 쓰고 있는 일본제품을 버릴 것까지는 없다. 다만 페이스북에 자랑만 하지 말자.

둘째, 일본차를 향해 손가락질이나 폭력행위를 절대 하지 말라.

두 번째 원칙은 일본의 극우파나 자생적 친일파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현상이기도 하다.

셋째, 일본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것까지 비난하지 말라.

이렇게 해서라도 손실을 줄이려 노력하는 상점 주인은 한국인이다.

넷째, 한국에 머무는 일본인에게 절대 공격적 행위를 하지 말라.

사실 이번 갈등의 초기만 해도 이런 우려는 별로 크지 않았다. 트와이스 사나 퇴출요구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본지 기사에 대해 압도적 다수의 독자들이 호응을 했다. 그러나 일부 연주회에서 일본인 연주자에 대해 욕설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때도 나머지 모든 관중은 뜨거운 격려박수를 보냈고 당사자는 공연도 안보고 공연장을 떠났다고 한다.

절대 다수 한국인의 시민의식은 극일의식을 앞세우는 와중에도 세계인의 보편적 가치관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애국심이 고조되면서, 철없고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애국자인 모습만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전보다 무책임한 주장을 더 많이 내놓고 있다. 그런 충동주의적이고 맹동주의적인 행동 역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공을 위해 기다리는 빌미 가운데 하나다.

일부는 이런 원칙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집어넣고 있지만 그건 별개의 얘기다.

많은 시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불매운동의 준수원칙 가운데 공통되는 점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참으로 꼭 필요한 얘기들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한국 내 일부 식자라는 사람들조차 불매운동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지금은 분위기가 아닌 걸 눈치 채고 입을 다물고 빈틈만 노리고 있는 중이다.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생각을 고치기 전에 어리석은 입을 또 열지 않도록, 빌미가 되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함께 강조하는 것은 일본인 모두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또한 우리와 함께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함께 승리해야 할 연대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사람은 모두 '무라카미 순사'인가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을 하면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이 일본인 자체가 악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지식사회현상'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사고방식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믿음체계가 영향 받는 것을 말한다.

여기다가 수학의 '대수의 법칙'과 비슷한 현상도 있다. 선수들의 운동실력을 측정할 때, 표본이 작으면 출중한 선수 몇 명으로 통계숫자가 대단히 월등해지지만, 표본이 커가면서 결과는 평범한 수준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개별적으로 만나는 일본사람들의 생각은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선거와 여론조사를 통해 대규모 집계가 되면 '그 밥에 그 나물'이란 속담처럼 그 친구도 하등 다를 바 없는 일본인이었을 것이란 선입견을 주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일본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의 믿음체계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나라 양식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의 초석이다. 일본의 2대신문인 아사히신문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일관되게 일본의 과거를 망각한 정책행태를 비판해 오고 있다.

한국 사람들 고정관념 속의 일본인은 '무라카미 순사'다. 1970년대 KBS 인기드라마 '여로'에 등장하는 일본 순사다. 바짝 말랐고 히틀러 콧수염을 달고 있다. 수시로 나타나 주인공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때로는 가족을 붙잡아가 모진 고문을 한다.

좀 더 젊은 세대들 고정관념으로는 '미와 경부'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일제경찰로, 드라마에서 행동거지는 이마에 '나쁜 일본인'이라고 써 붙이듯 만나는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험악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전하는 얘기로는, 미와 경부의 실제 인물은 애국지사인 월남 이상재 선생을 대할 때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태도는 공손했다고 한다. 드라마처럼 악랄한 제국주의 경찰로 생을 마감했는지도 불확실하다.

만약 일본인은 모두 무라카미 순사고 미와 경부라고 생각하면서 극일운동에 뛰어든다면, 실제 일본인을 만났을 때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첫인상에서부터 크게 당황하게 된다.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제국주의 잔존세력들은 드라마처럼 그리 단순하게 '나는 나쁜 사람' 표시를 내지 않는다. 더 교묘한 언동 속에 발톱을 감추고 우리의 허점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과잉행동은 숨어있는 무라카미들이 선의의 일본인들을 반한 혐한으로 선동하는 토양이 된다.

이런 점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의 훌륭한 지침을 만든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한 일이다. 역시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은 엄청난 저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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