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중심지 홍콩 건재... 환율조작국 충격 일축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P,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P, 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정치와 외교에서는 하나의 위기가 다른 위기의 해결책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날 때가 있다. 위기가 겹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위기를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순리대로 해결하다보면 저런 현상이 나타난다. 순리에 어긋난 행태를 지속한다면 물론 앞선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더 많은 다른 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은 지금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더욱 격화돼 마침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시위로 인해 '하나의 중국' 내에서 또 다른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직후인 6일 중국은 환율안정을 위한 채권을 홍콩에서 대규모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덕택인지, 의외로 아시아 외환시장은 환율조작국 지정이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안전의 지표로 간주되는 엔화환율은 105엔에서 다시 106엔대로 올라섰다. 엔화는 안전통화로 간주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우려할 일이 벌어지면 엔화의 선호도가 높아진다. 환율조작국 지정과 같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엔화 수요가 더욱 높아져 엔화환율이 하락한다는 게 외환시장의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홍콩은 지금도 아시아 최대 금융 중심지다. 홍콩의 정치 불안으로 위상이 다소 약화됐지만 아직은 아시아의 최고금융도시다. 이러한 홍콩의 강점이 이번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대응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은 중국이 지금의 '홍콩 수렁'에서 무난하게 벗어날 수 있는 명분과 필요성이 된다.

홍콩사태가 악화되는 최악의 경우는 중국의 군 투입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의 모든 이미지 개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국제 시장에서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대표기업들까지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1980년 이후 모든 개혁개방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세계가 홍콩을 배후에서 흔들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이번 시위의 직접계기는 중국의 송환법 추진이다.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일국양제'를 더 확실하게 실현하려다가 가만있는 홍콩을 건드린 결과가 됐다. 어떻든 울고 싶은 사람 뺨을 때린 건 분명하다.

하지만 홍콩의 금융역량이 중국의 무역 갈등에 대한 대응에 큰 힘이 되고 있음이 분명한 이상 홍콩이 여태껏 해오던 것들을 최대한 보장할 필요도 더욱 절실해졌다.

이를 배경으로 중국 내 '어떻든 경제보다 정치가 우선이다'라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을 설득할 여건도 마련됐다.

오랜 역사의 중국이 남긴 교훈 중에는 "북으로 조조를 상대하고 동으로 손권과 화친하라"는 말이 있다. 제갈량이 서촉 정벌에 나서면서 형주에 남은 관우에게 전한 조언이다. 조조와 손권이 동시에 쳐들어오면 군사를 나눠서 막겠다는 관우에게 제갈량은 그리 되면 형주의 신세가 대단히 고단해질 것이라고 만류했다.

관우는 이 조언을 듣지 않았다. 성경 다음으로 전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일 수도 있는 삼국지 독자들은 관우의 고집으로 인해 너무나 뼈아픈 순간을 읽게 된다.

세계사는 그 어떤 강자도 두 개의 적을 상대해 이긴 적이 없다. 진정한 강자는 적이 아니라 친구를 잃지 않는 능력의 소유자다.

중국이 177년 전, 홍콩을 빼앗긴 것은 제국주의 침략의 뼈아픈 역사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의 역량으로 이를 되찾았고 침략이후 홍콩이 갖춘 금융 중심지 기능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홍콩인들에게 '하나의 중국'을 강요하지 않아도, 중국이 천연의 국력을 토대로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체제의 선진화도 이룬다면, 홍콩인들 스스로 '하나의 중국'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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