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애를 안먹인 고마운 상대, 뭘로 보답할 것인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상당히 무례한 발언이긴 하지만 실감나게 자기감정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루클린 임대 아파트에서 114.13 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말해 구설을 자초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비판하는 국내 일부 세력들에게 빌미가 되기 딱 좋은 발언이다. 한국에서는 진보정권이라고 해도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 순위로 강조하고 있는데, 강성 진보주의자들은 이게 불만이다.

미국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하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못난 외교를 하니 이런 대접만 받는다"고 비판에 열을 올리고, 극단적 진보성향을 가진 이들은 "어차피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면 한미동맹도 파기하라"고 주장한다.

미국과의 우호를 책임지는 당국자들은 양쪽으로부터 매를 맞는 신세가 되고 있다.

지금처럼 주변 강대국들이 일제히 한반도 정세개입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시기에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관계는 최대한 보존해야 하는 것이 절대적 과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한미관계 자체는 별 탈이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같으면 상당한 반발이 있었겠지만 한국은 선뜻 방위비 증액에 합의해 줬다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일본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국가들에게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농후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특히,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그가 임대료에 빗댄 발언을 해서 눈길을 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사업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의 가난한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돈을 벌 것이 아니라 맨해튼으로 진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언급한 임대아파트 월세는 그가 젊은 시절 별로 호감이 없었던 사업을 의미하는 듯하다.

사실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은 상당히 거친 일이다.

당장 낼 돈이 없어 쩔쩔매는 사람이지만,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어떻든 이들한테 돈을 받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강제수단을 동원해서도 안된다. 취약계층은 법으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기도 한다.

대중들이 봤을 때 부동산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고혈을 착취하는 악덕 재벌이지만, 그 사람들 나름으로는 다른 부자들과 달리 참으로 힘겹고, 별로 자랑하고 싶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최근 가장 주목받는 초선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지역구 내 가난한 세입자들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그가 아마존 본사가 지역구에 들어오는 것을 격퇴한 것은, 지역은 발전해도 지역구민들은 살 곳을 빼앗긴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같은 배경의 차이가 트럼프 대통령과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 간의 충돌이 빈번한 근본원인으로 풀이된다.

이런 경력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임대아파트 월세 10만원을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젊은 시절,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배울 때 '왜 우리는 이렇게 궁상맞게 부자가 돼야 하나'라는 반발도 했을 법한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월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참으로 까다롭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의 대명사인 셈이다. 돈 나오기 힘든 사람들한테 받을 돈을 받고 나면, 돈이 들어와 좋다는 것보다 한동안은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우선적으로 들게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한국으로부터 10억 달러를 더 받은 것이 임대아파트 10만원 받은 것보다는 쉬웠다는 것이지 아주 쉬웠다는 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받고 나서 상당히 홀가분했다는 즐거움은 담겨있다.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외국으로부터 국방비를 더 받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회원국들과 이 문제로 몇 년째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별로 애를 안 먹이고 더 내기로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고마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2016년 대통령 당선 직후, 한국인들과 함께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로 그런 기억을 이번에 또 한 번 확인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성격에 비춰볼 때, 지체 높은 수준의 어휘를 동원한 탁월한 문장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것은 "미국 대통령이 우리에게 이렇게 감사했다"는 국내정치용 의미나 있지 별로 실익도 없다. 더구나 요즘은 그가 속을 긁어놓은 국가원수들이 많아서, 한국만 트럼프 대통령과 친근한 편지가 오고가는 것도 좀 부담스러운 데가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남달리 애를 먹이지 않는 국가에 대해 말보다는 외교나 경제에 대한 실질적인 보답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는 것이 두고두고 그의 통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오고가는 뭔가가 전혀 없다면, 누가 주둔비를 더 올려달라는 요구에 선뜻 호응하겠나. 같은 돈이 나가더라도, 따질 것 이상으로 따져보고 달라고 하기 전에 주려던 것도 깎으려들게 될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미국내 일자리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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