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삼성 관련 관세 발언 등 부쩍 늘어난 움직임... 배경은 무언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의 지난달 6월30일 정상회담 모습.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의 지난달 6월30일 정상회담 모습.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고 있다.

미확인의 논란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10억 달러를 받는 것은 브루클린 임대아파트의 월세 114.13 달러를 받는 것보다 쉬웠다"고 발언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19일에는 팀 쿡 애플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때문에 삼성과의 경쟁이 어렵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쿡 회장은 애플은 주요부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팔 때 관세를 내야 하는데, 생산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하는 삼성은 관세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회장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고 쿡 회장의 지적이 매우 설득력 있다고 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회장의 지적에 대해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관세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인지, 삼성도 애플만큼의 불리한 상황에 처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는 언급이 없었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의 업계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해 미리 엄포를 놓는 모습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갑작스럽게 한국에 대한 언급이 늘어난 것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뭔가 요구할 것을 단계에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으로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더힐의 18일(현지시간) 보도다.

더힐의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을 쥐고 있다'는 기사는 애플 관세 등 경제현안과는 일단 별개 분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한국과 관련한 움직임이 부쩍 늘어난 것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는 데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힐의 보도내용을 요약하면, 현재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명백한 동의나 반대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더힐은 궁극적으로 한국이 참여하거나 공식적 지지를 표명할 것으로는 예상했다.

이 전략에 대해 한국은 일본 호주 등의 다른 동맹국들과 다른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더힐은 강조했다. 바로 전략의 정당성, 즉 명분과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지만, 관행에서 벗어난 미국의 정책을 단순히 지지하지는 않는다며, 한국의 동참은 전략의 진중함을 더 해준다고 더힐은 분석했다. 또한 한국의 지지는 강대국들이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다자공동이익에 대한 설득력을 높일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더힐은 같은 이유로 중국이 한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지지와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동참을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더힐이 전하는 내용을 풀이하면, 미국이나 중국이나 한국의 지지는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공정한 신뢰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아시아역사에서 새로운 강국이 된 청나라가 조선의 지지를 원했던 것과 흡사한 면도 있다.

1635년 후금의 홍타이지는 몽고 최후의 대칸 에제이의 항복을 받았다. 원나라 황제의 옥새를 손에 쥐었을 뿐만 아니라 8기병 못지않게 용맹무쌍한 몽고기마병도 휘하에 거느려 명나라를 더욱 압도할 군사력을 갖췄다.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중국 고궁박물원.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중국 고궁박물원.

홍타이지는 이제 국호를 청나라로 고치고 황제에 즉위하려 했지만, 동북아시아 국제사회에서 명망 있는 천자가 되기에는 딱 하나가 부족했다. 바로 천자의 학식에서 나오는 덕이다.

홍타이지의 주위에는 일기당천의 용감한 무사들만 가득했지, 글과 예법을 아는 지식인과 그들의 문화가 부족했다. 유목민이 입술에 짐승피를 바치는 식으로 황제즉위식을 해봐야 명나라뿐만 아니라 아직 복속하지 않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조롱거리만 될 일이었다. 여기서 홍타이지가 주목한 것이 8년 전, 성에 차지 않는 우호조약을 맺은 조선이었다.

홍타이지는 조선이 앞장서 자신을 황제로 추대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면서 강경한 자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은 이를 거부했고 1년이 되기 전에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홍타이지가 조선으로부터 황제에게 필요한 명분과 예법을 얻으려고 부심하는 모습은 삼전도의 강화협상에서도 나타난다. 이미 군사적으로 압승을 거둬 조선왕의 항복을 받기로 합의하는 자리에서 청나라 대표 용골대는 앞서 조선이 명나라 사신을 만날 때 예법을 물어가면서 그에 따르려고 하는 모습이 역사에 남아있다. (관련기사: 삼전도에서 인조가 피를 흘렸다고?)

당시 국제사회에서 예법은 명분과 천하백성의 인망으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조선이 군사적으로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도 국체와 왕실을 존속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군사력이 빈약해 특히 침략군의 이동경로 민중들이 처참한 수난을 겪었고 온 나라가 한동안 가혹한 세폐에 시달렸다. 그러나 외교력이 건재해 영토를 잃지 않았고 국가 존립 위기를 벗어났다. 이러한 외교력을 미리 적극적으로 행사했다면 전란의 고통을 피하거나 크게 덜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고 있다.

현재 한국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요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역할로 최대한 받아낼 수 있는 것이 무언지를 찾아내는 노력이 절실하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