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는 신기루"... 뼈를 때리는 비판에도 남는 의문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호텔 델루나는 생을 마친 영혼들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 이승에서의 한을 풀기 위해 머무는 곳이다. 건물의 외관이 엄청나게 화려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는 정원과 수영장, 놀이공원까지 엄청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이 호텔은 많은 자금을 투자해 세워졌다.

그런데 이 돈은 현실세계의 돈이 아니다. 이 호텔을 관장하는 신이 꽃을 키워 그 꽃을 천상에 바친 댓가로 받아낸 것이다. 현실을 사는 인간들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 돈으로 단돈 1원을 마련할 수 없으니 그런 점에서는 가치가 0원이고, 현실 세계 돈은 아무리 쏟아 부어도 그 호텔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도 살 수 없으니 그 점에서는 가치가 무한대다.

귀신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돈으로 만든 호텔이다. 호텔 역시 사실은 귀신들에게만 보이고 접근가능하다. 인간들에게는 아담한 3층 이내 근대 건물일 뿐이다.

귀신에게는 최첨단 고층건물의 초일류 호텔이지만, 인간세계에서는 그저 그런 방치된 건물일 뿐이다.

이 호텔의 장만월 사장도 마찬가지다. 인간화폐의 기준으로 그는 도박과 사치로 인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파산자에 가깝다. 그러나 귀신들의 세계에서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재력을 갖고 있다.

호텔 델루나는 자기 세계만의 화폐 체계를 갖춰 뭐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호텔 델루나'의 화려한 내부는 귀신들에게만 보인다. /사진=tvN드라마 유튜브 화면캡쳐.
'호텔 델루나'의 화려한 내부는 귀신들에게만 보인다. /사진=tvN드라마 유튜브 화면캡쳐.

호텔 델루나와 같은 자기만의 완벽한 경제를 페이스북이 최근 시도했었다. 자체 가상화폐인 리브라 발행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발상은 페이스북에게 수세에 몰렸던 미국 정치권의 거센 반격을 초래했다. 앞서 미국 의회에 출석했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에게 무식한 질문을 했다고 조롱받은 의원들이지만, 리브라에 대해서는 우열이 역전됐다. "통화정책이 뭔지도 모르고 함부로 넘봤다"는 의원들의 비판에 페이스북은 궁색한 변명만 내놓은 채 발행 보류를 선언하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는 하루도 충돌을 멈추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Fed)제도 이사회 의장까지 리브라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자신들만의 호텔 델루나를 짓는 비결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호텔 델루나의 화폐인 꽃과 현실세계 통화는 완벽한 차단벽으로 인해 전혀 연결될 수가 없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가상통화는 최초 보유를 현실세계 돈으로 해야 되는 등 얼마든지 현실 화폐와 통용이 가능하다.

호텔 델루나는 겪을 필요가 없는 일, 기존 화폐체제로부터의 견제와 비판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 형사 대사 중 하나가 "깍두기는 깍두기 세계에 머물고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깍두기는 암흑세계를 말한다. 건달들끼리의 영역다툼이라면 경찰도 수위조절의 여지가 있지만 무고한 민간인의 생업을 침범해 폭력을 휘두르는 건 선처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강철중 형사는 암흑세계와 평범한 서민사회의 완벽한 차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통화가 한 때 어마어마한 투자열기를 몰고 와 비트코인 채굴에 필요한 컴퓨터 부품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유망투자처라는 환상으로 이미 몇 만 배나 가격이 폭등한 비트코인을 뒤늦게 사들이고는 "이것만이 미래경제의 대안"이라는 옹호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실물경제에 전혀 기반을 두지 않은 비트코인의 현실가치 폭등은 신기루일 뿐이라는 비판이 거듭됐다. 최고점에 도달한 직후 폭락과 반등을 거듭하다 현재는 최고점에 비해 절반 정도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아무런 생산 활동과 무관하다는 지적은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뼈를 때려서 가루가 되게 하는 '팩트 폭격'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아무리 한 치 빈틈없이 완벽하다 해도 여전히 남는 큰 의문은 있다. 아무 생산가치도 없는 비트코인에 왜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매달리게 됐느냐다.

그 원인은 현실세계의 화폐체계가 닿지 않는, 비트코인만이 필요한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현재는 '가상세계'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바로 그 곳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귀신들만의 호텔 델루나는 갈 수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가상세계를 더욱 개발해 가고 있으며, 저마다의 가상세계들이 점점 더 넓게 연결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 가장 완벽하게 공평한 화폐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트코인은 원래 이래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말썽이 난 것은, 이런 태초의 성격을 외면하고 가상에서의 가치를 현실에서의 가치로 환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가상은 가상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대했다면 누구도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비트코인을 오늘 사서 내일 팔면 몇 배를 남기나"에 집착한다면, 2017년 이후와 같은 폭락위험을 회피하기 어렵다.

점점 넓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동전의 양면처럼 듀얼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낮의 고수익 컨설턴트 앤더슨과 밤의 사이버세계 전사 네오가 되는 '두 개의 세계'에서 '두 개의 인격체'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난다.

가상세계는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 인간들에게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이와 같은 '이중 세계' 또는 '듀얼 세계'의 탄생을 알리는 첫 신호일 뿐이었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최공필 박사와 본지 장경순 기자는 앞으로 지면을 통해 '가상세계 혁명'에 관한 시리즈를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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