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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트럼프 덕에 '뜻밖의 깨달음'을 얻다
중국, 트럼프 덕에 '뜻밖의 깨달음'을 얻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09.06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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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들, '집 나가면 큰 고생'을 실감한다는 의미는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자학적 역사관을 갖는 사람들이 흔히 트집을 잡는 것 가운데 하나가 조공이다. 재물을 중국의 강요에 의해 갖다 바쳤으니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학적 사관이 심해지면 이와 같은 조공을 안 해도 되게 일본이 한국을 독립시켜줬다는 식민사관이 된다.

근세이전, 한국과 중국의 다자안보동맹 관계를 주종관계로 폄하하면서 자신들의 진짜 침략을 숨기려던 것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의도였다. 제대로 실상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내 나라 원수들의 말을 여태 신봉하고 있는 자들의 존재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인구가 5000만 명의 큰 나라에 별 사람 다 있는 법이긴 하나, 나의 자손은 절대 이런 역적논리에 휘말리지 않게 충분한 지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점차 다른 민족과 국경을 맞대고 접촉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외교를 하게 됐다. 천자와 제후간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외교지만, 용어와 형식은 봉건제도의 것들을 그대로 적용했다.

조공이란 말은 주나라 천자가 사냥대회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큰 제사를 지낼 때의 용어다. 각국 제후가 사냥에 참여하면서 천자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는데, 빈 손으로 올 수는 없는 것이다. 저마다 특산물을 들고 와 제물로 바치는데 제물은 사실 천자에 대한 예물이었다. 이걸 받은 천자는 제후들이 침략을 받거나, 난신적자가 반란을 일으키면 이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점차 생산력이 커지고 제후국들도 커지자 1회성 조공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아지고 정치적 상징성이 커졌다. 주나라를 호위하는 제나라 환공과 왕호를 자칭하며 중원에 맞선 초나라 성왕의 대결은 상징적인 조공으로 해결됐다. 초성왕이 "초나라의 웅 아무개" 명의로 청모 한 수레를 주나라 천자에게 바치는 걸로 양군의 충돌 위기를 넘겼다. 그 대신 제환공은 초나라가 내부적으로 왕호를 쓰는 것을 거론하지 않았다.

청모는 초나라 특산물로 제사 때 쓰는 술을 걸러내는데 필요한 식물이었다. 이미 남방 제후들의 맹주자리를 차지한 초나라 국력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물건이었다.

제후가 아닌 조선, 흉노, 돌궐, 만주족, 몽고 등과 외교를 하면서 조공의 명칭은 그대로 이어졌다. 외교 형태가 된 조공에서는 무조건 천자가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군사력이 더 강한 쪽이 받는 입장이 됐다.

한나라는 흉노선우에게 빈번히 조공을 보냈고, 송나라도 서하와 요 등 북방 강국들에게 조공을 했다.

이런 점에서, 고려나 조선이 중국 천자에게 조공한 것이 군사력 약한 속국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군사력이 약해도 까닭 없는 물품을 수 백 년씩 바치다보면 "이걸 우리가 왜 계속 보내야 돼?"라는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

바꿔 말하면, 조공이 근세까지 지속됐다는 건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얘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사진=AP,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중국의 북방 기마민족에 대한 조공은 단순한 전쟁방지 물품이다. 물건을 보낼 때마다 변경을 침략한 북방 군대가 철수했다. 물품 수량에 따라 평화유지 기간이 정해졌다. 유목민들은 배고플 때쯤 다시 중국으로 청구서를 들고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이에 비하면, 고려나 조선의 송 명 청에 대한 조공은 통상과 다자 안보체제의 성격이 강했다.

우선 조공은 공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조공에 대한 답례를 뜻하는 말이 사여다. 조공하는 뜻을 가상히 여겨 격려품을 준다는 것인데, 사실은 무역의 형태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제일 두려워한 것은 변방의 이민족 가운데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 갑자기 국력이 왕성해지는 것이었다. 5호16국의 난을 겪으면서 이런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주변국들로부터 중화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겠다는 확답을 받는 것이 중국 외교의 가장 큰 과제였다. 로마와의 가장 큰 차이다. 로마는 새로 등극한 황제들이 민심 장악을 위해 끊임없이 정복을 해야 했다. 까닭 없는 침략도 수도 없이 일으켜 끝내 모든 이민족들에게 불공대천의 원수가 된 나머지 멸망하고 말았다.

중국은 북방의 기마민족을 복종시키려면 강한 군대를 갖거나 물건으로 평화를 샀다. 이와 달리 고려와 조선에 대해서는 우선 천자가 무식하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했다. 그래야 공자의 인본사상을 제대로 깨우치고 왕도를 갖춘 황제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조선이 만주족의 청나라가 강성한 줄을 정묘년에 익히 알고도 9년을 더 버틴 것은 청나라 황제의 덕에 대한 신뢰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장수들은 병자년 갑옷을 입고 기마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와중에도 외교협상에서는 명나라 때의 예법을 일일이 조선 관리들에게 물어서 배워가며 실행하려고 애를 썼다.

둘째, 대국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는 부강함을 과시해야 했다. 이것은 자발적인 존경심을 얻기 위해 필요했다. 세계 최강대국에게 물산의 풍부함을 과시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본 적도 없는 물건이 연경의 시장에 가득했다.

이렇게 조공과 사여가 오가는 물품은 해당 업종의 상인들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됐다. 중국 황실에 들어가는 물건이라고 하면 시중에서는 한없이 귀한 물품으로 평가됐다.

중국이 천자국의 지위를 수 천 년 누린 비결은 군사력이 아니라 세계 최대 시장을 보유한 데 있었던 것이다. 군사력은 한나라 효무황제 때 한 때 강성해 흉노 정벌에 나섰지만, 그 때 뿐이었다. 시장의 힘이야 말로 중국의 가장 큰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경제에서 중국의 모습은 예전과 아주 다르다. 가장 큰 차이가 가장 많이 물건을 사주는 강대국이 아니라, 한국 일본 등과 같이 미국에 물건을 더 팔려고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물건을 더 팔려고 위안가치를 일부러 절하시킨다는 의혹을 살 정도면, 미국과 각축을 벌이는 양대 강국으로 보기는 크게 미흡하다.

물건을 더 많이 외국에 수출하는 게 분명히 경제에는 이익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많이 사주는 시장을 가져서 다른 나라들이 의지하게 만들어야 진정한 최강대국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아직도 중국이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무역정책이 본의 아니게 중국을 '진정한 강국'의 길로 이끄는 조짐도 엿보인다.

로이터의 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으로 인해 그동안 미국에 물건을 팔아왔던 중화권의 기업들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로이터의 기사제목은 "집 만 한 곳이 없다(No place like home)"다. 집 나가면 큰고생인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의미도 된다.

인구가 15억 명으로 세계 1위이고 면적은 세계 4위인 나라가 인구 5000만 명의 한국과 물건 팔기 경쟁을 하는 자체가 장기 국가전략에 맞는 것이 아니었다. 무역 갈등으로 인해 중국이 물건을 팔기보다 물건을 사 주는 최대시장 국가로 변하는 새옹지마가 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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