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녁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 절반의 '자아'가 숨어있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삼십만 철기와 갑병들이 저마다 대열을 갖추고 진을 치니 그 위용이 십리에 이어졌다.

옆에서 펄럭이고 있는 용기(용의 깃발)는 그 크기가 웬만한 집 한 채를 덮을 만하다. 우뚝 솟아 강바람 산바람을 모두 받으며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내가 가는 곳마다 늘 함께 다니는 깃발이다.

중군 한복판에 세운 이 깃발이 십리에 늘어선 30만 장병들에게는 내가 와 있다는 신호다.

가장 먼저 깃발을 알아본 바로 옆 부대에서부터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함성소리는 30만 대군이 진을 친 강변을 따라 좌우 끝으로 퍼져나갔다. 중군에서 멀리 떨어진 부대일수록 황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응을 하는 시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삼군의 힘찬 함성을 들으니 이 전쟁은 어떻든 이긴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들과 함께 당장 싸움판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어제 저녁만 해도 장수들과 회의를 거듭하는 동안 묵직한 근심을 쉽게 떨치기 어려웠다. 역사에는 친정을 나서서 손쉽게 이기리라 자신만만했던 황제가 어처구니없이 포로가 돼서 대 망신을 당한 얘기도 전하지 않는가.

아군 장병들의 거센 함성이 전선에 가득하니 적장 또한 무슨 영문인지를 알아보려 진문 앞에 나왔다.

"신하 거얼단이 황제 폐하께 문안드립니다!"

말로만 듣던 황제의 3군을 실제로 보니 뒤늦은 신심(臣心)이 들기도 하겠지만, 저놈은 이렇게 물러날 놈이 아니다.

"문안드리는 자가 기마를 이끌고 오는 건 어느 예법인가?"

조정의 30만 대군에 비하면 저 쪽은 3만에 남짓한 열세지만, 제법 지형을 이용해 진영은 잘 갖춰놓았다. 역부족으로 패하더라도 질서 있게 물러날 태세다.

그동안 서북방 초원에서 제 놈이 저지른 온갖 행패는 외면하고 여전히 자기가 잘했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더 들을 것 없어 3군에 일제히 공격명령을 내리자, 겨울 강물은 아군 병사들의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적들이 물러가자 승리를 확인한 3군의 함성이 천지에 가득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칼바람 피바람을 무릅쓰고 나를 위해 싸우기를 마다않는 천하 용사들이다. 이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 내가 바로 이 세상의 천자다.

청나라 4대 황제 성조 강희대제가 준가르부를 평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웅호걸을 흠모하는 장부들이라면 누구나 뜨겁게 가슴이 달아오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태어나서 정말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을 무조건 행복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런 영웅이 되려면 우선 창칼이 난무하는 난세에 태어나야 한다. 경제가 힘차게 성장해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런 세상을 살라고 하는 건 몰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는 망언이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DramaKBS 유튜브 화면캡쳐.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지휘하는 모습. /사진=DramaKBS 유튜브 화면캡쳐.

그래도 옛 사람들의 행적에서 전해지는 벅찬 감동은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 나를 강희대제의 자리에 놓는 것으로 짜릿함을 엿볼 수밖에 없다.

그 상상을 좀 더 실감나게 해 볼 수는 없을까.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1972년 저서 '서구 민주주의의 두 얼굴'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출발 당시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인간의 불평등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보여 내세에 성취될 신 앞에서의 평등에 비하면 아주 지엽적인 것이었고, 내세야말로 진정한 삶이며 현세는 하나의 유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됐다. 이는 불평등을 그 희생자에게 감수시키는 실로 교묘한 방법이었다."

18~19세기 서구 산업 국가들이 경제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신앙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착취했다는 얘기다. 내세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하층 계급의 노동자들이 착취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내세가 아니라 퇴근 후의 보상으로 낮 시간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입사동기보다 학력이 미흡하거나, 근성이 부족해 어느덧 나는 그를 팀장으로 모시는 과장에 머물고 있다.

능력이 인정된 사람도 짜증과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 분야 전문가라고 인정을 받자 성가신 일이 끊일 날이 없다. 자기가 아쉬워서 같이 일하자고 해놓고는 나중에 성과는 전부 자기가 가져가려고 한다. 한두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남이 하는 모든 말을 좋은 뜻으로 믿어줄 수가 없다. 어쩌다 낯을 익힌 부장 한 사람은 자기가 발표하는 자료를 자꾸 나한테 부탁한다. 자기 할 말 스스로 준비할 능력도 없으면 그 자리는 뭐 하러 차지하고 있나. 염치라고는 전혀 없는 인간들이 애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그래도 이제는 세상이 조금 좋아져서 이 모든 스트레스는 오후 6시까지다. 그 이후까지 염치없는 소리를 하면 정말 내입에서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내 실력이 부족해 동기 또는 후배를 윗사람으로 모시는 것도 오후 6시까지다.

예전에는 회식을 한다고 하면 집에서 먹기 힘든 음식 제대로 먹는다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회식이야 말로 짜증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 또한 세상이 좋아져서 눈치 없이 회식을 남발하는 부장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오후 6시부터야말로 정말로 성스러운 나만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 나는 다시 천자만의 상징인 황금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30만 철기군을 지휘하러 나서는 것이다.

근세의 노동자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내세의 보상을 믿고 오늘의 고통을 참았다. 

내가 저녁마다 창조하는 나만의 가상세계는 300년 전 노동자들의 내세와 달리 오늘 당장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근세의 신앙이 그랬듯, 현대인들의 가상세계는 낮 시간의 고통을 보상해준다.

이 뿐만 아니다. 가상을 좀 더 실감나게 해주는 장치는 계속 진화한다.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특수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앞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시선이 모두 황제가 바라보던 것과 똑같다. 기술이 더욱 발달해 체감장치도 착용하게 된다면, 적진의 힘없는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갑옷 위에 닿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가상세계는 낮 시간 다른 사람들의 현실세계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준다.

가상세계가 가상에만 끝나지 않는 이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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