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세기 산업경제로는 도저히 접근이 안되는 것이 있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게임이 만들어주는 가상세계에 푹 빠져서 현실의 고민을 잊는 사람이 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한테는 생소한 얘기다.

게임몰입을 '할 일 없는 짓'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선택하는 다른 일이라면, 전통적으로는 TV시청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 얘기다.

통행금지가 있던 1970년대 까지는 밤 12시 이전에 끝나는 TV를 끝까지 보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 전에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 경제가 2차 산업에 집중하던 때고, 기술을 앞세운 제품보다는 선진국보다 값싼 제품을 부지런히 많이 만들어 고도성장을 하던 때다. 이때는 대부분 국민의 생활 일정이 똑같았다.

11시 이전 잠자리 들어 7시 전에는 모두 일어났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하는데, 생산성보다는 많이 만들기만 하면 되는, 오늘날보다는 상당히 단순한 경제였다.

이때는 장발족을 경찰서에 붙잡아가 머리를 깎는 일이 정말로 있었다. 장발문화로 '저항 아닌 저항(?)'을 하던 젊은이들은 골목에서 거리로 나가기 전, 경찰이 있는지 없는지 동네꼬마한테 물어보면서 다녔다.

이렇게 획일적인 문화를 갖고도 고도성장을 했던 건, 당시 한국의 성장단계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돈이 되는 단순한 단계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이런 성장은 전혀 불가능하다. 단순 생산이 아니라 혁신이 절실한 단계기 때문이다. 이제 생산성 없는 생산은 오로지 일자리 제공의 의미만 갖는다.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니 복지정책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는데도 한마디로 '미친 놈'이 필요해진 세상이다. 남들이 안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 열 명중 아홉은 정말 미쳐서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가 이 세상을 뒤바꿀 엄청난 '돈 덩어리'로 숨어있다.

이런 숨어있는 혁신가를 찾아내야 하니 옛날처럼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단속할 수 없다.

1980년대만 해도, 정상급의 대중 문화인이 결혼을 하려는데 그 쪽 집안이 워낙 유명한 집안이어서 반대를 못 이겼다는 얘기가 많았다. 대중 예술인을 낮춰보는 전근대적 시각이 여전히 만연한 때문이다.

만약 이런 문화가 지금도 기승을 부렸다면, 한류 영화와 드라마, 방탄소년단과 같은 K팝의 대성공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한국의 성장 단계에 따른 필연적 변화이기도 하다.

자연히 모든 사람들의 생활모습도 바뀌었다.

인터넷 공간에는 '성시'라는 단어가 있다. 오전 3시33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건 옛날 얘기지만, 밤새워 인터넷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1차적으로 잠자리에 들 기준으로 삼는 시간이다.

이때까지 사람들이 하는 일은 TV시청, 게임, 인터넷 잡담 등이다. 물론 술로 지새우는 사람도 있지만 인체의 한계로 이는 어쩌다 하루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밤이 깊은 줄 모르게 시간을 보내는 일로 유튜브가 등장했다.

한번 유튜브를 보면, 한 시간이 그냥 지나간다는 사람들이 흔하다.

유튜브의 인기는 게임보다 더 한 측면이 있다.

게임에 깊게 빠져서 게임을 더 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 밤새워 게임을 한 나머지 매일 지각을 하고 일에 집중을 못하니 그만 두게 될 뿐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이걸 만들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 두는 사람이 계속 나온다. 이는 외신에서도 소개된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이와 같은 유튜브 현상을 기획전문가인 박수화 씽크탱크바이메이카피 대표는 "경험 소비"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남이 경험한 것을 내가 소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남의 경험이 미디어 개체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유튜브가 제격이다.

대표적 경험소비 대상이 여행이다. 특히 해외여행은 돈이 많이 드는데 관심 있는 그곳이 정말 가 볼만한 곳인지 찾아보는 제일 좋은 방법이 유튜브 검색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안데스 산맥을 다룬 유튜브 동영상. /사진=유튜브 화면캡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안데스 산맥을 다룬 유튜브 동영상. /사진=유튜브 화면캡쳐.

이렇게 여행유튜브에 대한 소비가 많아지니, 동영상을 내가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사람도 늘어난다.

물론 유튜브 공급시장도 한 번의 커다란 조정기를 거쳐야 될 것으로 전망되니, 지금처럼 너도나도 "유튜브한다"는 유행이 변화를 겪기는 할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PC통신으로 등장해 2000년대 인터넷으로 변신한 '밤의 객잔'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인기드라마 방영이 끝나면 해당 드라마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갤러리들에 밤새워 소감이 쏟아진다.

프로야구 갤러리는 언젠가부터 '디씨인사이드의 수도'라고 불린다. 일주일 6일 동안 매일 다섯 경기가 벌어지는 프로야구만큼 다수대중의 애환대상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또 없다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이렇게 자정을 넘은 새벽까지 '밤의 객잔'은 화려한 조명을 자랑한다.

그런데 20세기 산업경제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이 불빛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다행일수도 있다. 무슨 신나는 얘기가 오가는 줄도 모르면서 잠을 방해하는 불빛으로만 여기고 단속하겠다고 덤벼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밤의 객잔'들은 귀신 세계가 아닌 이상, 날이 밝은 아침의 이 세상에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밤새 덜컹거린 인터넷은 좀 더 빠르면 좋겠고, 프로야구 선수는 야구갤러리에서 밤새도록 얻어맞았는데 오늘은 정말 잘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경각심을 갖는다.

그리고 여행유튜브는 장면도 좋고 설명도 좋은데 현지 여행의 핵심인 냄새도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것들이 '밤의 세계'가 현실세계에 던져주는 숙제다.

게임이든, 유튜브나 인터넷이든, '밤의 객잔'이 성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 던져주는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낮에 하고 있는 일뿐만 아닌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서 모두들 이렇게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세계를 만들어서라도 나만의 '천지창조'를 하는 이유다.

20세기 산업경제로만은 절대 접근이 안 되는 시대 흐름이다.

(편집자 주: 기사에 소개한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야생 퓨마 다큐멘터리에 포함된 장면입니다. 일반적인 해외여행으로는 가기 힘든 곳으로, 초식동물뿐만 아니라 이 지역 생태계 상위포식자인 퓨마의 서식지라는 점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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