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복지과잉'과 또 다른 '기본소득' 논의에 담긴 고민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기본소득 논의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쉬운 말로 바꾸면 무상임금이다. 공짜 돈 뿌리기다.

한국에서는 참으로 조심스런 개념이다. 수 천년동안 국가를 지탱해온 근본 가치관 가운데 하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밥도 먹지 말라'는 부지런함이다.

여기에 몇몇 국가들의 복지 과잉이 경제파탄을 가져온 반면교사가 더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에 의해 행정책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표만 얻으면 된다는 정치인들이 무상으로 돈을 뿌리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정치전문가들은 이런 돈 뿌리기 공약이 과연 선거에서 얼마나 표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뭐라도 안하면 안 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강박증으로 자기 돈을 마구 쓰는 건 아무도 뭐라 않는다. 공공의 세금을 남발하니 문제다. 재정을 고갈시킨 폐해를 회복하려면 낭비한 시간보다 몇 배나 더 긴 세월이 걸린다.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일개 자치단체장 후보가 무상자금 지원 공약을 들고 나오면 그 사람이 달리 할 말이 없으니 세금으로 표를 사겠다는 소리나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당선되면 재정을 고갈시켰으니 필시 세금을 더 많이 거둘 것이란 예상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이런 복지과잉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복지과잉이 아니라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칸디나비아 선진국이다.

핀란드와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복지천국이라고는 불리지만 제3세계 복지과잉 국가와는 전혀 달리 평가된다. 이들은 훌륭한 경제를 이룩해서 그에 걸맞은 복지체계를 갖춰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한 때 2000 명을 대상으로 매달 560 유로(약 74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대상자가 취업을 해도 지급한다. 취업을 하면 지원금을 못 받는다는 점이 취업의지를 저하시키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실험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 듯 아직까지 더 이상의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게으르면 밥도 주지 말라'는 교훈과 어긋난 기본소득이 이론적 연구대상이 되는 것은 기술진보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다.

생산을 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사람이 아닌 기계만 있다고 모든 것이 다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기계를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수는 예전에 기계 대신 사람이 일할 때에 비해 훨씬 적어졌다.

기계가 하는 일의 차원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주어진 명령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판단도 하고 있다.

조훈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전설의 바둑 고수다. 그는 1980년대 한국 바둑계를 지배했다.

당시 언론에서 조훈현 9단을 표현하는 방법은 조훈현 국수, 조훈현 명인 등 다양했다. 신문사마다 갖고 있는 기전의 챔피언 자리를 모두 그가 차지했다. 조 9단의 이름 뒤에 자기회사 기전의 타이틀 명칭을 붙여서 표기했다. 그런 기전이 10여개쯤 됐으니, 그를 나타내는 언론의 표현도 10여개에 달했다.

당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조 9단은 컴퓨터의 능력을 상당히 낮게 평했다. 이미 체스는 컴퓨터가 사람을 이겼다는 해외뉴스도 나오던 무렵이다. 조 9단은 바둑의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아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만약이라도 가로세로 19줄의 바둑판에 한 줄을 더 추가한다면 컴퓨터는 더더욱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로부터 세월이 30여년 흘러,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기사 이세돌 9단에게 4승1패의 우세를 기록했다.
 

이세돌 9단이 2016년 알파고와의 네번째 대결에서 승리한 후 복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세돌 9단이 2016년 알파고와의 네번째 대결에서 승리한 후 복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체 학습능력을 가진 21세기 컴퓨터는 펀칭카드로 입력하던 1980년대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돌변한 것이다.

이제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고 자신할만한 영역은 철학만 남았다고 할 정도다. (1980년대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기계가 철학을 하는 면모를 보이기는 한다.)

모든 생산을 컴퓨터가 맡아서 하게 되면, 월급을 못 받게 되는 사람들의 생계문제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인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극히 일부 컴퓨터를 관리하는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은 돈벌이를 못한다. 할 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제체제에서는 소비가 사라진다. 소비가 사라진 경제는 생산의 동기부여를 주지 못한다. 경제는 곧 가동을 중단한다.

기계가 기계끼리 소통하고, 정보망은 5G의 차원을 넘어 더욱 확대되고 빨라질 것이다. 사람이 생산에 관여할 여지는 더욱 축소된다.

기본소득은 이와 같이 사람이 생산에서 무용지물이 되더라도 소비주체로는 건재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기본소득이 이런 의도대로 작동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인기밴드의 공연에 수 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흥겹게 춤을 추고 따라 부른다.

만약 이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없어서 돈도 못 버는 것들이 무슨 공연관람이냐"고 호통을 쳐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밴드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공허한 연주만 하게 된다.

생산에 대한 기여도가 점점 낮아지는 사람들을 소비 활력소로서는 남겨두는 방법. 현대의 경제가 해법을 찾아야 할 또 하나 숙제다. 어찌됐든 부가가치 창출은 이 사람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