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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나진항,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
"북한 나진항,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09.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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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매체 분석... 북한, 개방 후 고도성장에 따른 새로운 카리스마 창출 여력 리비아보다 훨씬 더 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남북한관계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 지도층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적화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배경에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반공교육의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은 국가의 틀을 갖추지 못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땅을 점령하고 마음대로 주민들을 부려먹는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비춰볼 때 산적 집단 같은 통치로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없다. 왕조시대에도 커다란 관점에서 봤을 때는 군주가 시대적인 민심의 틀에서 머무는 동안 왕조가 유지됐다. 시대와 민심의 변화를 군주가 따라가지 못할 때 새 왕조가 들어섰다.

북한 역시 나름대로 국가의 존재에 필수적인 이념이 있고 그것이 북한 주민들을 '국민'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북한 지도층이 이것을 주민들에게 주입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번 형성된 이념에 지도층이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지도층 내에 몇 차례 정변이 발생했다. 이를 한국에서는 반공교육의 속성상 김씨 일가의 권력 독점을 위한 폭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도층이 수용하기 힘든 방침들을 제거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

북한을 유지하는 가장 큰 국가이념은 '주체사상'이란 명칭을 갖고 있다. 이것의 본질을 일반적 단어로 설명하면 그들만의 '혁명에 대한 신화'다. 봉건체제에서의 해방,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격퇴, 미국과의 투쟁 이런 것들을 '혁명'의 역사로 종합해 북한주민들에게 최고의 국가가치관이 돼있다.

김일성 이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김씨 일가가 통치를 하는 것은 북한의 '혁명'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실현하는 길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가능하다.

이 '혁명'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에서의 외세 격퇴가 들어가 있다. 한반도에서 외세를 격퇴하는 것은 한국역시 북한과 같은 체제로 통합하는 것을 분명히 포함한다.

따라서 만약 한국이 매우 허술해져서 북한이 강제로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북한 통치자가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 이 기회를 포기한다면, 정치의 속성상 권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만의 '혁명이념'으로부터 더 이상 보호를 못 받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명백히 하나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여전히 그들의 '혁명이념'을 20세기 냉전시기와 같은 형태로 간직하고 있는 이상, 북한은 기회가 왔는데도 한반도 적화를 포기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님을 한국은 여전히 기본전제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북대화와 평화정착시도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1991년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더 이상 서로를 국토의 절반을 강점한 불법집단으로 간주할 수도 없는 단계가 됐다.

평양시 대동강을 운행하는 식당유람선 '대동강호'에서 촬영한 평양시 풍경. /사진=뉴시스, 평화경제연구소.
평양시 대동강을 운행하는 식당유람선 '대동강호'에서 촬영한 평양시 풍경. /사진=뉴시스, 평화경제연구소.

북한이 갖고 있는 혁명이상 가운데서 봉건체제에서의 해방은 한국은 시민사회의 자연적 진화에 따른 해체라는 다른 관점으로 공유하고 있다. 일제 침략 격퇴 역시 최고 수훈자가 누구냐는 관점의 차이만 제외하면 더욱 크게 공유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 미국과의 투쟁이 북한의 '혁명' 가운데 한국이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점이다.

북한이 대미투쟁을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국가이념으로도 이끌고 있는 것은 한반도 무력통일 욕구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외침위협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무력침공은 중국과의 상호방위조약으로 억제할 수 있다 해도 북한주민들의 저항을 선동하는 형태의 침략 역시 북한 권력자들이 극히 경계하는 요인이다.

자신들을 지키려는 위기의식이 '혁명 이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인데, 이점만큼은 새로운 다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바로 경제개발이다.

한국도 1960년대 중반 이후 10%대 고도성장을 거듭하자 박정희 정권의 18년 장기집권이 가능했다. 일본 역시 민주주의 국가인데도 자유민주당의 유례를 찾기 힘든 일당 장기집권이 가능한 것은 경제성장 때문이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두 나라는 사회체제가 함께 유연해지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북한은 대외개방에 따른 경제개발의 희망을 보고도 체제 위기의식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른바 '리비아 모델'에 따른 불안 때문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은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후 35년 동안 가장 강경한 반미국가를 이끌었다. 2004년 그가 미국과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친서방 노선으로 전환하자 평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7년 후 리비아 국민들의 거센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그는 처참하게 살해되는 운명을 맞았다.

북한이 리비아라는 단어 자체에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이런 역사 때문이다.

모든 것이 리비아와 같을 수는 없지만, 서방과 화해를 한 후 사회가 개방되면 반체제 저항운동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를 하는 건 북한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면이 있다.

하지만 북한과 리비아가 분명히 다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다피는 집권한 직후 석유의 무기화를 내세우며 제1차 오일쇼크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를 통해 리비아는 놀라운 경제성과를 이뤘다. 198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 달러 수준일 때 리비아는 이미 5000 달러의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카다피가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카리스마는 바로 이 경제성장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가 2004년 서방과 화해에 나섰을 때 경제성장에 따른 카리스마는 이미 30년 전 얘기가 돼 있었다. 경제가 그의 통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7년 현재 1171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의 1977년 1051 달러가 이와 가장 비슷하다.

북한 경제의 잠재력을 논외로 하고 성장단계만을 감안해도 이는 앞으로 엄청난 성장여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제대로 정책수립이 되고 시행된다면 10%대 고도성장을 30년 동안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장기고도성장은 엄청난 정치적 카리스마를 가져온다. 지금의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를 고려할 때까지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지도자라는 위상을 내내 유지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정상회담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외교전문 매체인 내셔널인터리스트는 29일(미국시간) 북한의 나진항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가능성을 강조했다. 미국 해군대학의 라일 골드스타인 교수는 이 글에서 중국 역시 나진항을 일대일로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북해로 가는 출구라고 강조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얼지 않는 바다를 갈구해온 러시아 역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골드스타인 교수는 "이 곳의 시장에는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가득하며 과일코너는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 역시 압박정책이 비생산적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점진적 변화를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한반도 정책에 한국이 협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제안이 미국의 동참과 함께 이뤄질 경우 한국 역시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된다.

골드스타인 교수는 "나진항이 1970년대 중국개혁가들에게 희망의 신호등이 된 것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설과 개발에 폭 넓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빛나는 북한 항구는 트럼프 대통령의 혁신적인 외교에 적합한 유산이 될 수 있으며 그의 동북아시아 다자외교를 포용하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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