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관건은 전환기를 정확히 판단하는 안목과 적응 능력이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공감대 하나는 필요하다. 이 공감대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가끔씩 큼직한 문제에 닥치기는 했지만 어떻든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를 평가한다면 성공한 경제의 하나라는 것이다.

1970년대 입학한 지금의 586세대는 초등학교, 즉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한국이 대단히 잘 사는 나라인줄로 알았다. 학교 복도 곳곳에 가득한 '1981년 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 달러' 구호는 전 세계 최고수준일 것으로 알고 자랐다.

그러나 조금 학년이 지나,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중하위권이란 걸 알게 됐다. 형들의 지리책에 있는 세계지도에서 한국이 얼마나 작은 지를 처음 알았을 때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커가면서 현실을 절감하는 또 하나의 성장과정이었다.

내가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아닌 것을 더욱 실감나게 절감하는 건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 신문도 보기시작하면서다. 가끔씩 뉴스에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 경제지표가 소개됐다. 한국이 이제 1000 달러가량을 넘어가던 시기인데 동독 폴란드 루마니아 등 이들 국가의 국민소득은 3000 달러를 넘고 있었다.

이런 나라는 공산당이 국민을 착취하고 강제노동이나 시키면서 헐벗는 나라라고 배워왔는데 실제 현실이 이게 아니었다. 대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더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방 경제전문기관이나 CIA보고서라며 한국 경제가 1979년까지도 북한 경제에 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 권력 핵심부의 이모저모를 다룬 '청와대 비서실'이란 책에 나온 일화는 이 얘기를 뒷받침한다. 박 대통령이 고위급 경제참모들과 함께 북한 경제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함께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1960년대 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한국이 경공업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선진국 경제에 예속되고 주변국에 머무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비판은 의미를 크게 잃었다. 한국은 현재 경공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박 등 중공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 세계 최고급의 첨단기술을 갖고 있다.

인구 5000만 명의 국가가 3만 달러 안팎의 1인당 소득을 올리면서 세계 11위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경제를 건설해 온 과정에 뼈아픈 수난의 시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미국이 1990년대 IT 혁명으로 생산성이 부쩍 높아지자 대대적으로 국제투자자금을 미국으로 불러들인 점이 있긴 하다. 금리만 해도 3%에서 6%로 두 배가 되자 한국과 같은 신흥국시장에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런 점이 한국에서 돈이 이탈하는 한 이유는 됐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아시아 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진 건 아니다. 당시의 아시아 4룡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가운데 외환위기를 겪은 건 한국뿐이다. IMF 위기는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는 한국 경제에서 상당히 망신스런 일이기도 하다.

분명히 당시 한국의 국가관리가 잘못된 점이 있었다.

IMF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신속했고 '금 모으기'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극적인 면도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더 지키는 노력이 너무 소홀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성공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남겨 놨다.

하지만 하루하루 다급했던 당시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와서 한가하게 그 때 잘못한 걸 세세한 것까지 꼬치꼬치 시비 거는 태도는 자제한다. 다만 당시 일들을 냉정하게 분석해서 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공과 과를 정리해 둘 필요는 있다.

이런저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현재의 11대 대국에 이른 한국 경제다. 우리가 물려받은 자체가 형편없다고 푸념하고 원망만할 처지는 절대 아니다.

2016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사진=뉴시스.
2016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사진=뉴시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해 작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부터 시작한 한국 경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진만 봐도 한국 사람들의 옷차림과 패션은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참 볼 품 없었다.

그랬던 사람들인데 일단 보릿고개를 넘어가고 굶어죽을 걱정에서 벗어나자 특유의 멋과 흥을 좋아하는 감각까지 더욱 세련돼 갔다.

그것이 오늘날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인기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장경로에 대해서만큼은 앞선 시대 사람들을 탓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저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에 대해 이것저것 비판을 하겠지만, 이것이 과거 탓을 하는 게 아님을 강조한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하고 물가상승률도 마이너스로 나왔다. 한동안 못 봤거나 올해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소아적 이해관계로 누구 탓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 인구가 5000만 명이나 되는 한국에서 이런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대세는 좀 더 깊은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결정해야 한다. 두 개의 마이너스 경제지표는 한국 경제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지를 통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만약 오늘날에 이르러 성장엔진을 이제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 할 시기가 왔다는 신호라면 이걸 충분히 이해하고 대부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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