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위원회, 갈수록 사라지는 전문가 의원들 '목소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회의장에서는 '베네수엘라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지사와 행정자치부 장관 경력을 가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무리 그래도 한국은 베네수엘라와 다르다"고 발언하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다를 것 없다'는 논지로 1990년대 베네수엘라의 석유기업 국영화부터 들고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은 이제 국영화하듯이 국민연금이 개별기업 사장도 임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오랜 역사에 비춰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논쟁이다. 그리스에 문제가 생기면 "과연 한국은 그리스가 될 것이냐"였고, 아르헨티나 경제가 심각하면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자리에 아르헨티나가 들어갔다.

국민연금의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제시장의 우량투자자들이 한국 기업 지배구조를 비판해온 데 대한 반응의 성격을 갖고 있다. 기업인사에 정권의 입맛을 섞을 것이란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스튜어드십 코드의 당위성 자체를 국유화에 빗대 비판하는 건 상당한 논란 거리다.

그래도 요즘 들어 재정을 축내는 현금 지급 정책은 국민적 우려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편승하는 행태를 보여 우려가 더욱 크다.

경제전문가들이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지만, 이런 새로운 발상을 실현하더라도 철저히 중앙정부의 정파를 초월한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진행될 일이다.

이렇게 따지면, 국회의원들의 논쟁이 전혀 쓸모없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자리가 그런 얘기만 할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기재위는 지난 8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였다. 중앙은행이 아니라 재무부처에 대해 따질 일들을 이곳에서 거론했다. 한은이 하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는 국회인 듯 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연임을 받은 이주열 총재가 6년째 맞는 국정감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한은의 핵심 업무는 전혀 건드리지 못한 '태평성대' 국감처럼 진행됐다. 한은의 소득주도성장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고쳤는지 시비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는 자체가 이런 방증이다.

중앙은행의 틀 자체가 크게 뒤흔들리고 있는 국제 금융시장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국감 현장으로 들고 온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이 "저혈압 경제"라며 저성장 문제를 제기했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저성장 문제에서 금리인하 같은 전통적 방법으로는 아무 효과도 없으니 한은이 국채를 직접 매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중앙은행 문제'를 약간 쳐다보기라도 한 정도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금리를 내리던 지난 달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미국 단기자금시장에서는 자금난이 벌어졌다. 일부 하루짜리 금리가 Fed의 연방기금금리보다 4배를 넘는 10%를 넘어갔다. Fed의 금리인하를 코앞에 두고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소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분분하다. Fed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의존한 귀결이라는 시각도 있는 한편, 중앙은행 제도의 한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아직까지 기준금리를 1.5%로 유지하는 한은으로서 정책여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으로서도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미국 자금시장의 소동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을 면밀히 살펴보는 의원이 최소한 두 셋은 기재위에 있었다. 20대 국회 후반기인 현재는 아무도 이런데 관심이 없다.

이번 국회의 전반기만 해도, 세 명의 맹활약 경제전문 의원들이 기재위에 있었다. 이 가운데 두 사람은 다른 상임위원회로 옮겨갔고 다른 한 사람은 이런저런 당 안팎의 사정에 깊게 연관된 본인의 처지로 거시경제에 집중이 어려운 현실이다.


'재상' 출신 의원도 사라진 기재위

기재위는 경제학 박사 의원뿐만 아니라 '재상' 출신 의원들의 경륜이 윤활유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야의 관료출신 의원들은 자칫 기재위마저 정치 격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 왔다.

2004년의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개혁만 외쳤다는 선입견이 존재하지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부총리 출신 김진표 의원, 부총리란 공식 명칭만 없었을 뿐인 사실상 부총리 경력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있었다. 이들은 정책과 정치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다. 이 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법도 많이 통과시켜서 700이던 종합주가지수를 2000으로 급등시킨 때가 이 때다.

재상(宰相)은 좁은 의미로는 총리·부총리 급에 해당하지만, 장관이나 차관도 '상(相)'의 지위를 칭할 수 있다. 현재 기재위에서 이 경력을 갖춘 사람은 자유한국당의 두 명이 전부다. 하지만 두 의원 역시 지금의 흐름에서 자꾸 정치 핵심 이슈의 관성에 끌려들어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기재위의 이런 취약성은 특히 한국은행을 다룰 때 역력히 나타난다.

한국 정치가 유권자의 참여를 더욱 중시하는 개혁을 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는 영역은 아니어도 거시정책이나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차분히 접근하는 국회의원이 한 두 명 있다면 이들 의원들의 소속 정당은 이미지가 향상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의원이 그런 한가한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다.

예전의 '3김 시대'와 같은 '보스 정치'에서는 카리스마를 가진 당 총재가 전문가 의원을 임명해 그를 후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원마다 당내 경선을 거쳐야 총선에도 출마할 수 있다.

올해 국정감사처럼 내년 총선 직전에 열리는 국회는 의원들이 더더욱 자극적인 정치이슈에만 매달리게 된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면, 당 전체의 경제실력을 과시하는 일도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허용이 안 되는 일이다. 한 차례 비례대표로 당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겐 두 번째 '은혜'란 없다. 국회의원을 더 하고 싶으면 지역구 의원으로 나서야 한다. 사실상 지역기반은 없는 사람들이니 이제라도 당 지지층의 눈길을 사로잡을 일을 해야 한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파고드는 건 전혀 도움이 안된다.

한국은행의 때아닌 태평성대 국감은 이래서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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