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달러중심 세계 중앙은행 체제가 뒤흔들리는데 금통위로 해결되나

한국은행의 1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와 임지원(왼쪽), 신인석(오른쪽) 금융통화위원. 임 위원은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하 반대, 신 위원은 지난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의 1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와 임지원(왼쪽), 신인석(오른쪽) 금융통화위원. 임 위원은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하 반대, 신 위원은 지난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은행이 2019년 10월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1.25%로 정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로는 앞으로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

여기서 한번이라도 더 내리면 사상최저 금리가 된다. 뭐든지 '사상 최고' '사상 최저'같은 것이 덧붙으면 말의 성찬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놀림이 더욱 거세진다.

그런데 녹차 한잔 마시면서 5분만 심신수양을 해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얘기다. 도를 닦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그동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평범한 기억력으로 되돌아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올 들어 분기 중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낮아지는 일이 연초에 있었다. 9월 들어서는 물가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도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너스 성장과 마이너스 물가다.

성장률과 물가는 이 나라 최고 경제당국자 두 사람의 가장 중요한 성적표다. 성장률은 경제부총리의 '국민 성적표'고, 물가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총재가 책임지는 '법정 성적표'다. (재미있는 건 두 기관이 서로 상대편 수장의 성적표가 되는 경제지표를 집계한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제도적으로는 은근히 디테일한 모습이다.)

두 성적표가 전부 마이너스인데 한은이 금리를 안 내리고 버티는 것도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상황을 놓고 보면 이렇다.

그런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따지려는 사람들은 할 말이 많아진다. 당장 2017년과 2018년의 금리인상을 따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그 때 무슨 경기가 그리 좋다고 금리를 올렸냐"는 것이다.

한편으로 5~6년 전으로 회상기간을 늘리는 사람은 반대편에서 따지려든다.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이리저리 끌려 다닌 까닭에 기껏해야 금리를 0.25%포인트밖에 못 내릴 형편이 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저마다 모두 충정에서 하는 얘기들이지만,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이 전부 '부처님 손바닥 안의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다.

한국은 철저하게 달러중심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된 경제다. 달러경제의 본거지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전대미문의 기현상에 비춰보면 원화금리 0.25%포인트 오르고 내린 것에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 스스로 모습이 민망해진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급속히 극복하고 1999년 10%대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한국은 여전히 연말까지 국채를 9%넘는 금리로 발행하고 있었다. 경제위기가 10년 전에 발생해 여태 빚을 못 갚은 그리스는 2019년 10월 국채를 마이너스 0.02% 금리로 발행했다. 그리스 채권을 사면 나중에 이보다 적은 돈을 만기에 상환 받는 것인데도 투자자들이 몰린 결과다.

우리한테만 억울하게 고금리로 돈을 뜯어간 금융흡혈귀들을 뒤늦게 원망할만한 일이다.

어떻든 현실이 이렇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요구를 확실히 복종하며 무수한 사람들을 노숙자, 신용불량자로 거리로 내몬 한국과 달리 사회주의 정권의 그리스는 채권단의 속을 수없이 긁어가면서도 이런 결과를 얻고 있다.

기현상은 유럽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는 10월15일부터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매월 600억 달러씩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내년 6월까지 계속 이렇게 돈을 푸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고, 그 이후로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Fed는 지난달 금리를 인하하려는 데도 갑자기 단기자금시장에서 돈이 말라버려 금리가 10% 넘게 치솟았다. Fed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이런 조치에 나섰는데, 이게 요즘 Fed를 들볶아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의문의 1승'을 선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임명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해 금리를 계속 올린 것과 함께 보유채권 축소를 하는 것이 커다란 불만이었다. 채권 축소를 당장 중단하라고 수없이 요구했는데 Fed 스스로 이제 확장으로 돌아섰다.

전 세계 으뜸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서 채권 값이 올라가려는 데도 투자자들이 채권을 내다팔고 자금구하기에 나섰던 것이다.

Fed가 이런저런 변명 같은 설명을 했는데, 시장사람들의 귀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단적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서 그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문의 1승'을 했다고는 해도 이사람 자체가 지금까지 모든 중앙은행 정책을 어린아이 장난감으로 만드는 최대 원인제공자 가운데 하나다.

Fed가 으뜸 중앙은행으로 오래도록 신뢰받아온 것은 철저하게 통화금융 이론에 충실한 통화정책을 했다는 데 있다. 금리를 내리든 올리든 이것이 미국의 집권당 이해관계와 무관한 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으로부터 "미쳐가고 있다" "최대의 적"이라는 폭언을 듣고 있다. 올 들어 이미 두 번 금리도 내린 터다. Fed 의장 기자회견 때마다 대통령의 반대를 거론하는 질문이 나온다.

미국부터가 사정이 이러니 그동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에 이끌려 다닌 걸 비판했던 논객들 역시 특유의 결기가 크게 감퇴됐다.

미국에서 단기자금난이 벌어졌을 때 Fed의 변명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설령 법인세 납부나 국채 발행 결제가 겹쳤다하더라도 이 정도 일로 자금시장이 교란된 일이 또 있었느냐는 것이다.

시장의 기본이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설계가 시작되는 미국 시장에서부터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 역시 근본부터 뒤흔들리는 화폐 경제에 비춰보면 곁가지 소란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한 '틱' 올리고 내리는 건, 밑바닥부터 뒤흔들리는 망망대해에서 조각배 한 척이 돛을 올리고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한은의 이날 결정을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미 밝혔듯, 경제부총리와 중앙은행 총재 성적표가 모두 마이너스로 나오는 마당에 금리인하는 불가피한 면도 수긍이 간다.

중요한 건, 일시적인 지표의 등락이란 말초적 차원을 넘어 본질적으로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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