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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10개' 가치 유산도 제대로 못 쓰는 한국 경제
'유전 10개' 가치 유산도 제대로 못 쓰는 한국 경제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10.30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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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국 국채, 우량 자산 평가받으면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에는 유전 10개 가치에 해당하는 보물이 있다. 1998년 당시 이걸 얻을 때의 가치가 그 정도였으니 제대로 이걸 발전시켰으면 유전 20개 또는 30개에도 달할 만한 것이다.

채권시장이다.

대한민국의 금융시장 역사가 몇 년인데 채권시장이 1998년 생겼다는 말이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채권 자체야 한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 금융시장의 한 축으로 제대로 유통시장을 형성한 것이 단기(檀紀) 4331년인 1998년에 와서다.

이 나라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정말 보기 힘들게 일신의 처신을 한 치 흠결 없이 다스리시다 너무나 일찍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의 소신으로 얻어낸 보물이 채권 유통시장이다.

당시는 1997년 'IMF 위기'로 나라 경제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려던 시점이다. 곳곳에 돈 들어갈 곳들뿐이어서 정부는 10조원의 국채를 발행했다.

이 때까지 늘 그래왔듯, 채권을 발행해도 사줄 사람 찾는 것이 문제였다. 관례대로 한국은행이 우선 돈을 발행해서 이걸 사줄 것을 정부는 희망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행에 부임한 직후인 고 전철환 총재가 이를 반대했다. '안한다면 절대 안하는' 평소 인품을 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 총재는 정부에 채권유통시장에서 이를 소화할 것을 설득했다. 정부 또한 마침내 전 총재의 주장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1998년 9월9일, 3년 만기 국고채가 11.6% 금리에 팔려나갔다. 마침내 한국의 채권시장이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은행 채권전문 딜러와 유관인력, 여타 금융기관의 채권관련 금융상품 등 무수한 부가가치가 탄생했다. 채권의 유통기반이 탄탄해 지면서 한국 국고채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11.6%의 금리였지만 유통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급속히 5%, 4%대로 낮아졌다. 지금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5% 안팎이다.

그는 두 아들 결혼까지도 한국은행에 절대 비밀에 붙여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만드는 인품을 지녔다. 일부에서는 이걸 결벽증으로도 불렀다. 퇴임 후에도 정부의 요청에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 이해가 엇갈리는 공적자금 관리를 무난하게 하려면 그의 인품이 절실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한은 총재 임기를 마친 2년 후 타계했다. 향년 66세였다. 

1998년의 채권시장 등장은 유전 10개에 해당하는 부가가치 창출로도 평가됐다. 한은 인수가 아닌 유통시장 발행을 고집한 그의 소신과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인 정부가 모두 '유전 10개' 창출의 공신들이다.

안정된 국채유통기반은 국가경제에도 엄청난 이익이다. 기왕 빚을 낼 거면 국채로 내는 것이 정답이란 얘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로존을 보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 타개수단으로 활용한 양적완화 역시 국채시장이 있어서 가능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정부발행 국채를 중심으로 우량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할 일은 15년 전 돌아가신 분의 21년 전 업적만 칭송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분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훌륭한 보물이 제대로 대접받도록 우리가 할 일을 다했냐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아니오'다.

한국 국채가 우량한 금융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채권이 유용한 자산으로 간주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한국 국채는 활용성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 국채는 우리가 사면 이것을 담보로 다른 금융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보유한 미국 재무부 채권을 담보로 유럽에 가서 돈을 빌려 그곳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국인이 한국 국채를 사면 이런 담보활용을 할 수가 없다. 뉴욕에 사는 그가 한국 기획재정부 채권 100억 원어치를 사두면 한국 금융시장의 안전자산을 사들인 의미는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이 재산을 바탕으로 뉴욕에 빵집을 차려보겠다는 결심이 들었을 때 문제가 된다. 이걸 들고 뉴욕시내 어느 은행을 가본 들 이걸 담보로 받아줄 곳이 없다.

만약 한국 국채의 활용도가 달러나 유로채권 못지않게 뛰어나다면, 전 세계적으로 한국 채권의 투자자가 늘게 된다. 이들은 한국 경제와 이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국채는 한국 금융시장에서만 쓸 수 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인품은 훌륭한데 능력은 아직 검증이 안 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한국 국채다.

국채의 활용도가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제도적 장벽이 크다.

탄생한지 20년이 조금 지났다면 길다면 길수도 있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국채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장벽부터 개선해야 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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