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 위원 두 명에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 발언권...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펼쳐 보면 곳곳에 정부의 숨결이 전해진다. 제대로 된 나라 중앙은행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 회의록으로서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백악관조차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정책에 대해 입 밖으로 털끝도 꺼내지 못하는 미국의 관행은 ‘언감생심’이다. 행여 기획재정부 장관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수록되는 날은 한국은행 사람들을 민망해서라도 못 보게 될 듯 하다.
 
하지만 이같은 파행적 금통위 구조에 대해서는 차후에 지적하기로 한다.
 
‘금리 인하’기대가 무성했다가 ‘동결’로 결정이 난 지난 8월 금통위 의사록에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금통위원들의 최대 고민이 드러난다.
 
바로 ‘정책 여력의 상실’이다.
 
회의록의 한 부분이다.
 
“일부 위원은 ... 우리의 경우 대내외 위험요인이 앞으로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준금리의 하한선에 도달할 때까지 추가로 실시할 수 있는 정책여력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점, 실제로 정책여력이 소진되었을 때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당초 정책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점, 또한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가 경제전망 수정발표와 맞물리면서 국내 경제가 급속하게 하강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경제주체의 심리위축을 초래한 측면이 있는 점, 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장과의 정밀한 사전교감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결국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는 통화정책의 실질적인 경기방어 효과는 작았던 반면 정책여력만 소진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는 견해를 밝혔음.”
 
예전 금통위원들의 개성이 뚜렷하던 시절에는 익명이더라도 내용을 통해 어느 위원의 발언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기도 했지만, 지금의 금통위는 익명의 효과가 철저히 발휘되고 있다. 모두 성향이 같은 사람들만 불러 모아놓은 탓이다.
 
발언한 금통위원은 내용은 현행 3.0%보다도 더 낮은 2%대에 진입할 경우 통화정책이 더 이상 경기부양 수단으로 써먹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일찍이 일본이 ‘제로금리’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과 관련한 발언이다.
 
다른 금통위원의 발언에 관한 내용이다.
 
“또 다른 일부 위원은 ... 기준금리 인하 효과와 관련하여 차입자의 이자부담 경감뿐만 아니라 저축자의 불이익도 같이 추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음.”
자금 조달자의 금융비용을 줄이는 효과만 따지지 말고 금융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의 이자 수익 감소로 인한 마이너스 ‘부(富)의 효과’도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서 금통위원들이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 단계에서의 발언 중 일부다.
 
“다른 일부 위원은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조치가 실물경제 및 금융·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고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도 적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여 이번 달 기준금리는 현 수준 3.0%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음.”
 
앞서 소개한 발언의 금통위원 중 한 명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익명으로 하더라도 A위원, B위원 등으로 표기했다면 익명은 유지되면서 개별 금통위원의 일관된 논리 파악이 가능할텐데 현행 의사록은 그렇지 못하다. (이 경우, 물론 어느 위원이 A위원이고 F위원이 되는지에 대해 한은 금통위 담당부서가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가능성이 발생하긴 한다.)
 
이와 같은 논의 끝에 한은은 8월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정책여력 유지’에 대한 금통위의 고민이 시장에 제대로 전달됐다면 ‘깜짝 동결’ 따위의 혼선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지금 금통위와 시장간 소통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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