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국과 유로존의 화폐 남발, 아시아가 다 받아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로 마크 조각. /사진=AP, 뉴시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로 마크 조각. /사진=AP, 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제 금융이 전대미문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른바 '그렉시트'로 유로존 와해 위기를 가져왔던 그리스는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는 너무나 심각해 UBS는 50만 유로(약 6억5000만 원) 이상 예금에 연 0.6%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고액 예금자라면 이자를 바쳐가며 모셔 와도 시원찮을 은행원들이 오히려 "너무 많은 돈을 맡기셨다"며 일종의 보관료를 떼 간다는 것이다. 200만 스위스프랑(약 23억7000만 원)에는 0.75%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형편으로 따지면, 유로존 은행들이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하려는 검토는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마이너스 금리가 심해져 맡아놓은 예금으로 이자를 줄만큼의 돈을 벌 길이 막막하다.

그래도 예금에 어떻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냐는 조심스런 태도로 그동안 고통을 감수했지만 이제 은행들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이 된 것이다.

그렉시트 위기에서 핵심 현안이었던 그리스의 연금제도는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방만한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그리스는 연금의 운용수익률을 더욱 높여야 된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마이너스 금리에 따른 은행들의 고통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요즘 일본은행은 은행당국자로 큰 소리치고 행세하던 권위적 자세는커녕 오히려 은행들을 찾아다니며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간청한다.

미국에서는 2018년 네 번이나 금리를 올리더니 2019년 들어서는 10월까지 세 차례 인하로 갑자기 돌아섰다. 이 과정에 미국에서는 정말로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의 중앙은행에 대한 폭언과 통화정책 간섭이 벌어졌다.

통화정책 간섭은 1992년 물러난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 중 몇 차례 연설 형태로 나타나기는 했었다. 그러나 중앙은행에 "미쳐가고 있다"고 폭언하는 것은 Fed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1960년대 우람한 체격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왜소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Fed 의장을 목장으로 불러 벽으로 밀어붙이며 저금리를 강요했다는 얘기 정도가 앞선 사례다.

미국이나 유럽이 마구 돈을 풀어도 당장은 이들에게 또 하나 믿는 구석이 있다. 아시아다.

어쨌든 지금의 시대에 미국과 유럽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안전 자산'의 표식이 붙어있다. 안전자산이라면 신용도가 낮은 아시아권에서는 무조건 사는 것이 본분에 맞는 태도다. 과연 이게 얼마나 안전하냐고 따지는 자체가 불경이다. 낙후된 아시아가 어디 감히 분수도 모르고 선진국 금융에 토를 다나.

선진국이 발행하면 묻지도 말고 사서 보관해둬야 한다.

샀다가 다른 데 쓸 생각도 말아야 한다. 무조건 아껴가며 지켜야 한다. 선진국 자산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후진국 중에서는 좀 낫네'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선진국들은 아시아를 충격흡수용으로 활용하며 폭탄 돌리기 놀이를 마구 벌일 수 있는 것이다. 터질 때가 되면 아시아로 떠넘기면 된다.

과연 아시아 금융은 언제까지 우리 자신의 생사를 남의 손에 맡긴 노예 노릇을 해야 되느냐다.

아시아 최대 경제인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로 인해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득한 점은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의 나라는 앞선 몇 차례 외환위기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쓴 맛을 크게 맛본 경험을 갖고 있다. 이 경험이 자체 금융시장을 성숙시키기도 했다.

역내의 역량을 결집하면 달러권이나 유로존과 또 다른 새로운 금융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과거 관념에 얽매인 행태를 지속한다. 함께 의논해서 남의 배설물 처리장 신세를 면할 생각은 안하고, 아시아 국가들끼리 서로 "우리가 미국 채권을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너보다는 더 낫다"는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달러와 유로 주도 경제가 더 심한 추태를 드러내고 그 여파가 불가피해지기 전에 아시아권에서 자체의 금융안전벽을 구축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단, 여기에는 충분한 수준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로만 참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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