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과연 시장친화적 정치인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4선 중진 김정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양대 거시경제 상임위 가운데 하나인 정무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전문' 정치인이다. 원래 그는 변호사 출신의 법조인이지만 정치인생이 그를 경제 분야로 이끌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와 함께 정무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을 소관하면서 또 다른 소관기관인 국무조정실을 통해 거시경제를 폭넓게 담당한다.

김정훈 의원은 2004년 초선으로 17대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한나라당(현재의 자유한국당)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기도 했다. 이 때 정무위원회는 특히 정치싸움에 따른 여야갈등이 극심했다. 17대 국회 최초 상임위원장석 점거가 벌어진 곳이 정무위원회다.

위원장의 발언에 약간의 빌미만 있어도 회의가 파행돼 강철규 당시 공정거래위원장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무한정 대기하는 건 일상적이었다.

이렇게 사사건건 충돌을 빚다보니 정무위원회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여야를 넘어 '핏정 살정 다 붙는' 우애가 생겨났다. 여기에 양념을 친 것이 김정훈 의원의 익살이다.

시중은행들의 '예금꺾기' 행태를 꼬집을 때는 "비틀기도 있는데 왜 꺾기라는 말을 쓰나"라는 말로 당국자들의 긴장을 풀어놓고 느슨한 대응을 질타했다.

이때 정무위원회는 그 어느 곳보다 덕담, 재담이 넘쳐났지만, 충돌현안이 발생하면 누군가의 잔잔한 의사진행 발언으로부터 시작해 양당의 '고성능 스피커'들이 최대출력으로 충돌했다.

열린우리당은 문학진 간사 외에 전병헌, 초선의 김현미 의원(현 국토교통부 장관), 한나라당은 권영세 간사와 남경필(전 경기도지사), 유승민 의원 등이 있었다.

한바탕 격한 충돌을 거친 의원들이 저마다 자기자리에서 수습국면에 들어간 동안 김현미 장관은 김정훈 의원에게 "아기곰 푸우같다"는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김희선 정무위원장을 대신해 간사로서 김정훈 의원이 회의를 진행한 장면은 YTN 돌발영상으로 남았다.

위원장석에 앉아 그가 평소와 다른 근엄한 목소리로 "질문하신 의원님 훌륭했습니다. 윤증현 위원장님 결의에 찬 답변도 매우 훌륭했습니다"고 발언하는 동안 여야의원석에서는 키득거리는 웃음들이 흘러나왔다. 그가 말도 다 마치기 전에 어느새 회의장으로 돌아온 김희선 위원장이 자기자리로 돌아가라며 옆에 서 있었다.

김정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그는 초선의원 때부터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상임위원장을 맡은 것도 정무위원회에서다. /사진=뉴시스.
김정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그는 초선의원 때부터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상임위원장을 맡은 것도 정무위원회에서다. /사진=뉴시스.

초선을 극심한 정치낭비를 체험하면서 보낸 경험은 김 의원이 19대 국회 3선의 위원장이 됐을 때 좋은 반면교사가 됐다. 2012~2016년 그는 정무위원장을 맡았다.

김 의원은 상임위원장의 교본, 갈등의 빌미가 될 말은 어조사 하나라도 절대 피하고 되도록 팔을 바깥으로 굽히는 미덕을 실천했다. 덕택에 충돌 많았던 정무위원회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012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무위는 불필요한 충돌이나 회의 지체 없이 일정을 순조롭게 마치고 공무원들의 여의도 시간낭비를 차단했다.

최소 재선 이상의 경력으로 상임위원장을 하는 국회의원들 가운데 이런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막상 자리를 맡았을 때 이를 실천하고 못하고는 위원장 개개인의 도량에서 비롯된다. 크게 보지 못하고 편협한 충동으로 편파성을 자꾸 섞는 위원장들일수록 회의 파행을 자주 초래한다.

재벌과 금융사 회장들이 '갑질' 또는 자사고 입시부정 등에 휘말리고도 국회 출석요구를 무시하는 태도를 못 고치자 김정훈 의원은 위원장으로서 야당의원들 요구를 받아들이고 정무위원회 차원의 고발로 맞섰다. 법원은 국회의 이같은 방침에 부응해 총수들에 대한 벌금을 높이며 더 한 처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늘어난 벌금 금액보다 이 사실이 한동안 뉴스를 차지하며 재벌들을 상당히 민망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로 여야의원들이 옥신각신 할 일이 없어지자 회의가 쓸데없이 길어지거나 파행될 일도 사라졌다. 야당인 민주당의 정무위원 중에는 정부비판이 가장 매서운 김기식 의원도 있었지만 김정훈 위원장의 진행을 따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예금보험공사 사장에게 파산 저축은행의 고객 보호를 위한 처리방식을 따질 때는 이를 함께 거들었다.

최근 자유한국당 일각에서는 부산에서 4선을 기록한 그의 거취를 거론하고 있다.

거시경제 현장에서는 정치가 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면에서 쏠쏠히 제 역할을 해 온 김 의원으로 평가된다. 경제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불려갈 때면 이런 정치인이 있어서 그나마 있는 그대로 소신을 밝히고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의원의 경제친화적인 성향 때문에 '진영논리'라는 병폐스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이는 국가경제에는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된다. 시장의 가려운 곳을 알아주던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자기만 애국자이고 개혁가인 척 소리 지르는 사람만 국회에 남는다면 경제는 이제 정치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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