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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무비' 시대를 열어준 스크린쿼터의 고마움
'K 무비' 시대를 열어준 스크린쿼터의 고마움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11.0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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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기생충'으로 이어진 1996~2003 르네상스, 무엇 때문에 가능했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쿼터제는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축소됐다. 2005년 한국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준비하면서다. 이때 안성기 · 장동건 등 국민의 애환을 달랜 수많은 스타들이 1인시위에 나서며 경각심을 높였지만, 어떻든 스크린쿼터는 이전보다 절반으로 축소됐다.

이걸 지키고 축소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흑백 구분할 수는 없다. 당시 장동건이 1인시위에서 "헐리웃이 '춘향전'을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백번 옳은 말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동시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 다른 국익을 챙긴 당국자들 또한 고차방정식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낸 것으로 평가해 줄만 하다.

무엇보다 이 시점의 한국영화계는 스크린쿼터를 도입할 때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한국 영화를 마지못해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 올리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한국 영화보호라는 필요성이 예전보다는 크게 줄어든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걸 무작정 폐지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스크린쿼터로 인해 오늘날 한국 영화가 얻고 있는 혜택은 과거 예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제도를 적절히 잘 유지해 앞으로 얻게 될 또 어떤 혜택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도 안 해보고 폐지하는 건 대단히 경솔한 일이 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올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된 것을 계기로 미국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를 집중 조명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포브스의 지난달 말 보도에 따르면 뉴욕 한국문화센터에서는 필름앳링컨센터와 서브웨이시네마가 오는 22일부터 12월4일까지 개최하는 행사를 통해 1996~2003년의 한국 영화를 소개한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송능환 감독의 '넘버3',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박종원 감독의 '송어',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등이 소개된다. 모두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기 이전의 작품들이다.

'살인의 추억', '넘버3' 등 작품성과 흥행 모두 큰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포함돼 있다. 그런 한편으로 이 가운데는 영화애호가가 아닌 사람도 한두 편을 봤는데 남들은 잘 모르는 그런 영화가 들어 있다. 기자에게는 '지구를 지켜라!'가 그런 영화다. 1970~80년대 전설의 고향에서 용모가 수려하고 성격이 강직한 선비로만 나왔던 백윤식이 새로운 차원의 연기를 영화에서 보여주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런데 신하균과 이재용이 함께 열연한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박스오피스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 아쉬움을 남겼었다.

한국 영화의 거장들. 윗줄 왼쪽부터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이준익 감독, 영화배우 정진영. /사진=뉴시스.
한국 영화의 거장들. 윗줄 왼쪽부터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이준익 감독, 영화배우 정진영. /사진=뉴시스.

헐리우드리포터(THR)는 7일(미국시간) 미래의 봉준호가 될 한국인 감독 5명을 소개했다. THR은 세계적인 팝음악 차트 빌보드를 소유한 빌보드-헐리우드 리포터 미디어그룹이 소유한 또 하나의 매체다.

THR 역시 포브스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를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평가하고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지운, 홍상수 감독 등이 이끌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다시 파켓은 THR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유망한 차세대 감독으로 '곡성'의 나홍진 감독을 제시했다. THR은 또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변성현 감독, '악녀'의 정병길 감독, '공작'의 윤종빈 감독, '악인전'의 이원태 감독도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고 전했다.

파켓은 "한국 영화 감독들 가운데는 또 하나의 영역에서 단연 앞선 사람들이 있다"며 "수준 높은 예술영화면서도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영화들이지만 국제 영화 배급자들은 이런 작품을 지원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THR은 꼭 봐야 할 차세대 한국인 감독으로 '벌새'의 김보라 감독, '생일'의 이종언 감독, '69세'의 임선애 감독,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몸 값'의 이충현 감독을 추천했다.

THR이 추천한 한국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들의 흔한 스타일과 전혀 다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크린쿼터를 통해 한국 영화가 지키고 발전시켜온 점이 바로 이런 면모다. 거대 자본의 입맛에 휘둘리지 않고 당시의 한국인을 그대로 전하는 영화들이 스크린쿼터 덕택에 끊이지 않고 탄생해 오늘날의 성공시대를 만들었다.

요즘 일부 한국 영화는 정말 예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른바 '헐리우드형 블록버스터'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때로는 아이돌 가수로 절정의 인기를 누린 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상영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기는 해도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만들기를 한국에서 만들어 자막을 보는 번거로움이 없을 뿐이지,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영화들은 스크린쿼터가 지켜준 터전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이제 거대 자본의 투자도 받을 수 있게 된 한국 영화의 오늘날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1980년대 초, 대부분 저예산 멜로물만 가득했던 시절의 영화도 오늘날 케이블TV에서 방영할 때 저절로 채널이 멈출 때가 있다. 요즘 흔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 시대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어서다. 인디채널의 소규모 영화들이 눈길을 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로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기기 때문에 시선이 끌린다.

스크린쿼터가 지켜준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 시대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와닿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형 영화에서 이런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순간의 멋진 장면을 위해 그 시대 장면과 그 당시 사람들 말투를 바꾸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진다.

차제에 스크린쿼터의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영화가 완전히 거대 외국영화 자본에 맞설 힘을 갖췄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기자는 그러한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이를 없애기보다는 한국을 넘어선 차원으로 범위를 넓히는 형태로 유지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영화 전문가가 아니니 개인차원의 생각을 차마 "제안한다"라고까지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거대 자본의 논리에서 독립된 영화라면,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의 작품도 일정 쿼터의 대상작품으로 포함하는 것에 몇 가지 장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혹시 스크린쿼터가 또 다시 통상압력에 직면했을 때 대응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스크린쿼터가 전 세계의 모든 문화요소를 지켜주면서 그에 따른 열매를 한국 영화계로 가져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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