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2-15 16:42 (일)
'허구세계'가 오히려 '진리'를 '가상'이라 부른다
'허구세계'가 오히려 '진리'를 '가상'이라 부른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11.17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 허위의식을 주입시켜 인간 스스로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저지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사진=네이버 영화 페이지.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사진=네이버 영화 페이지.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매트릭스에서 프로그래머 '앤더슨'에 머물러 있는 키아누 리브스는 스미스 요원에게 체포된다.

취조실에서 스미스는 "우리가 조사해 보니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더군"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나는 잘 나가는 회사의 촉망받는 프로그래머"라고 얘기할 때 스미스 요원의 말투는 자상하다. 그러나 돌연 어조를 바꿔 "또 다른 하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엄중하게 꾸짖는다.

참 인간들을 탄생부터 세뇌해 식민지 백성처럼 부려먹는 매트릭스는 스미스 요원에게 착취의 도구 역할을 맡겼지만, 이를 '백신'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으로 포장한다. 백신의 기능은 모피어스로부터 참된 인간의 길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네오'로 변해가는 키아누 리브스를 잡기 위해 스미스 요원이 직접 작동하기 시작한 자체가 매트릭스에게는 심각한 상황이다.

매트릭스의 태평성대는, 스미스 요원이 아니라 다른 매트릭스의 세뇌된 인간들 스스로가 체제 불순요인을 알아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매트릭스와 같이 허위의식에 가득 찬 허구세계는 참 세상을 '가상세계'라고 간주하도록 인간을 세뇌한다. 갈 수 없는 영역이란 좌절감을 잠재의식에 심어주는 것이다.

허구세계의 힘으로 직접 참 세상인 '가상세계'를 토벌하는 것은 최후단계다. 매트릭스 3편에 나오는 '뮤탈러시'와 '골리앗'의 대결이 이 장면이다.

그 이전에는 허구세계 자체의 경찰력으로 참 세상의 인식이 침범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것이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의 세계에 대해 영화와 같은 선악의 성격부여를 하는 건 지나치고 극단적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허위의식에 종속되는 '소외'의 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이 길이 참된 길이 아닌데, 단지 지금까지 해 왔다는 이유로 집착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원천봉쇄한다. 이런 폐습에서 자유로운 인간의 정치사회체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 또한 과거 다른 체제에 비해 자체비판에 좀 더 관대할 뿐이지 체제 자체가 갖고 있는 자기방어 본능과 기제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체제가 안고 있는 허구적인 면에 대해 우선 중앙은행에 대해 지적했다.

중앙은행 제도 자체가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갖고 있는 허상이 근거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달러맹신에 빠져있다. 달러경제 체제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애써서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 때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 우리 목소리를 내야 마땅한데 오히려 달러체제의 호위무사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쌓아둔 외환보유액을 들이대면서 달러체제가 무너지면 이걸 어떡할 거냐는 일종의 협박도 한다.

서구 금융체제의 한 축인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심해져 몇몇 은행은 이제 고액예금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나섰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에나 적용하는 기술적인 조치일 뿐이라는 호언장담은 헛말이 됐다.

미국에서는 금리를 내리는 하루 전 시장에서는 단기금리가 치솟아 Fed가 다시 매월 600억 달러 채권매입에 나섰다. Fed는 "양적완화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변명에만 급급하고 있다.

세상이 뒤숭숭한데 달러권이 아닌 한국의 금융당국은 혹시라도 달러 체제를 뒤흔들 것들이라면 더 질색을 한다.

신용도가 드높은데도 담보활용이 전혀 안되는 한국 채권의 현실이 이래서 초래되고 있다.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일종의 피해의식에 가득해 전혀 변화를 검토조차 못한다.

정작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고 기존 체제의 독트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국제 세미나에서 한국 당국자들이 가장 고상하고 '시문(詩文)'에 정통한 도학자들처럼 보이는 이유다. 이 '도학자'들이 이런 자리에서 제일 염려하는 건 '우리 식구(?)'가 공연히 흉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한국의 전문가가 기존 체제에 도전적인 발언을 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자기가 나서서 김 새는 발언을 한다. 이런 것도 허구체제를 떠받드는 보초병같은 역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