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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의 호위무사, 어떻게 물리쳐야 하나
'레거시'의 호위무사, 어떻게 물리쳐야 하나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11.2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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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개혁에 대한 반발, 사람보다 체제의 자기방어 본능 문제다
2015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려를 지키는 최고의 호위무사 '척사광'의 모습. /사진=SBS 홈페이지.
2015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려를 지키는 최고의 호위무사 '척사광'의 모습. /사진=SBS 홈페이지.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른바 '레거시'의 문제는 컴퓨터 기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구태를 지키기 위한 어리석은 행태는 어디서나 발견된다.

이걸 꼭 누가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사악한 의도에서 사회의 바람직한 개혁을 막는다는 비판에는 좀 조심스럽다. 지키려는 사람이나 고치려는 사람이나 저마다 충정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의 충정은 자라면서 받은 교육과 사회가 부여한 가치관 등에서 형성됐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오히려 지배당하는 '소외' 현상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체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체제는 생물체제가 아닌데도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자기방어본능을 발휘한다. 체제의 자기방어본능은 생명체의 몸처럼 정교하게 작동한다. 체제를 방어해야 할 사람에게 자기 임무를 다해야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시각의 교란이 발생한다.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이를 관리한 몇몇 사람의 탐욕만 응징하면 된다는 판단에 그치고 만다.

체제는 일꾼으로 부려먹던 사람들을 저항 운동가들에게 속죄양으로 내주고 다시 자신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

체제는 안 바뀌고 사람만 자꾸 벌을 받아 퇴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나면 대중들은 개혁 피로감을 느낀다. 수세에 몰렸던 기존 체제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개혁을 인류사회는 수없이 반복했다. 그래도 인류는 전진해왔다. 비효율적 개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개혁이 역사를 통해 몇 차례 큰 전환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질적 개혁이 가능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 전반으로 변화의 당위성이 폭넓게 인식됐던 시기다. 구체제의 방어기제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개혁의 대의에 동의할 정도일 때다.

개혁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구체제의 호위무사라고 하지만, 이들의 수구적인 행동을 잘 살펴보면 사리사욕만으로 설명이 안되는 면들이 많다. 물론 인간성을 향한 의지가 박약해 체제가 던져주는 작은 당근에 쉽게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구체제를 지키는 사람들의 주류라기보다는 극단적으로 사악한 일부일 뿐이다.

개혁에 대해 견제를 하는 대표적 집단으로 관료들이 많이 거론된다. 그런데 관료들을 특정인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기는 정말 어렵다. 기업과 달리 국가는 뚜렷한 최대주주가 없다. 대통령은 정해진 임기를 갖고 있다.

관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특정인 누구를 위한 집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비판은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관료들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우선, 한국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세계 11위, 또는 12위 경제대국이 됐느냐는 판단부터 해야 한다.

'IMF 위기'와 같은 엄청난 폭풍우가 있긴 했지만,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성공전략을 수립한 관료들의 역할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전제에서 미래를 위한 비판을 해야 한다.

누구누구가 사악하기 때문에 개혁을 저지하고 있다는 논리는 현실적으로 커다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문제가 된 사람을 퇴진시키거나 처벌하고 나면 더 이상 개혁의 추동력이 남기 어렵다.

저 똑똑한 사람이 더 나은 앞날을 위한 제안에 발목 잡는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오늘날까지 이 나라를 발전시킨 논리의 연장선에서 그런 것이라는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체제는 자기방어 속성이 있다. 우리를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만들어준 체제도 그렇다. 우리가 더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자신의 해체를 뜻하는 것이라면 현재 체제는 그에 대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된다.

구체제 엔진을 가동시키던 사람들이 방어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면도 있다. 이들뿐만 아니다. 학자를 포함한 체제의 친위여론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기존 체제로 이끈 국제기구의 한국인 직원이나 국제 세미나 현장에서 자기과시에만 빠져 눈 먼 돌멩이나 던지는 당국자들은 방어기제의 저만치 변방 초소에 해당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모든 방어단계를 싸우고 부수면서 개혁을 하려면 돌아오는 건 개혁 피로감뿐이다.

역시 본질은 인식의 확산이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먹고 살자'는 의지로 오늘날까지 이끌어온 사람들이니 서로 말이 안통할 수는 없다. 태평성대에 자꾸 이것 고치자 저것 고치자하면 평지풍파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전대미문의 기현상이 속출한다.

아직은 남의 나라 얘기지만 예금을 많이 가져오면 이자가 아니라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전 세계 모든 금융을 이끌어가는 경제1위 대국의 중앙은행은 돈을 풀었다가 묶었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한다.

체제의 방어본능에 앞서 체제 담당자들의 성심이 있다. 이처럼 뒤숭숭한 세계에서 새로운 길에 대해 차분히 얘기를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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