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구인들이 정한 금융관행, 뒤집고 고치는 것도 자기들 마음대로인가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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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매일매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들었다 놓는 숫자가 있다. 런던은행간금리(LIBOR, 리보)다.

세계 주요 은행들이 거래한 금리 수준을 집계해 톰슨 로이터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공지한다. 리보가 공지되면 모든 금융거래가 이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한국의 은행이 단기 자금을 빌릴 때 리보 3개월물에 가산금리 약간을 더해서 빌려오는 방식이다.

톰슨 로이터는 UN과 같은 국제연합기구도 아니고 Fed나 ECB 같은 당국기관도 아니다. 완전한 민간기관이다. 그런데도 이런 민간기관이 리보 공지를 담당한다. 톰슨 로이터 전에는 텔러레이트가 맡았었는데 이 또한 민간기업이다.

민간기관이 공지하는 리보인데도 세계적 공신력이 있는 것은 이른바 금융시장의 관행에서 오는 권위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행의 권위라는 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것뿐만 아니다. 미국국채와 일본엔이 안전자산인 것도 서구 금융인들이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에 안전자산이다.

그런데 그런 관행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리보는 이제 예전의 권위를 잃고 곧 다른 금리로 교체되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금융거래 기준이 리보에서 다른 금리로 바뀌면 한국 은행들은 관련 시스템을 교체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런 불편이 왜 초래됐나. 리보에 대한 부정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리보 고시에 참여하는 은행원 가운데 일부가 의도적으로 조작된 숫자를 제출해 자신의 거래에서 이익을 챙긴 사실이 적발됐다. 리보의 권위라는 것이 한 방에 무너져 내렸다. 범죄에 연루된 곳은 미국과 유럽은행 가운데 10위권인 바클레이즈였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 입장에서는 영미 은행들이 시키는대로 리보를 신봉하다가, 이들이 스스로 부정을 저지른 여파로 또 이걸 뜯어고치는 일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가 과연 리보 한 사례에만 그치겠냐는 걸 따져봐야 한다.

안전자산은 누가 무슨 기준으로 결정하나.

달러나 미국국채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이 안전자산이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주기 때문에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아시아가 이렇게 든든하게 밑천을 지탱해주고 있으니 이른바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더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갑질'이다. 갑질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죄 없는 아시아 국가들은 덤터기를 뒤집어쓴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되나.

아시아 금융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억울하게 예속된 신세를 절대 면하지 못한다.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말이 절대로 허상이 아니다. 현실의 절실한 요구다.

이걸 구축하려면 아시아 역내의 금융인들 스스로 앞장서야지 절대로 서구인들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영미 은행들이 앞장서야 할 이유가 없다. 아시아가 가만있는데 굳이 자신들이 나서서 밑밥으로 삼는 아시아를 제 살림 차리게 내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아시아 금융인들의 자각인데, 대다수 역내 금융인들이 철저히 서구 종속적인 금융관을 갖고 있다.

무조건 서구 금융의 관행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다는 비관만 앞세운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진취적인 발상을 제시하면 짧은 지식을 앞세워 이 사람을 면박 주는 데는 서슴이 없다. 국제 세미나 나가서 제대로 된 발언 하나 못하면서 영어 액센트가 아시아다 싶은 사람이 발언하면 거기에는 굳이 나서서 되도 않는 토를 단다. 이렇게라도 해서 자기가 어디 나가서 유학한 사람이란 티는 내고 싶어 한다.

아시아 역내 금융상황을 깊이 검토하면 특히 한국이 '아시아금융 허브'라는 대의를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

경제와 금융규모면에서 당연히 압도적 1위는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이상 완벽한 금융시장을 중국내에서만 구축할 수는 없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의 통합을 위해서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고 있다. 압도적 규모의 경제는 중국에서 이뤄지지만 정치 체제의 속성에 따라 제한 없는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은 다른 곳에 구축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서구인들이 내지른 뒷탈까지 아시아가 뒤집어쓰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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