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보다도 낮게 낮췄지만 경제 못 살리는 이유는 너무나 뻔하다

유로존에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AP, 뉴시스.
유로존에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AP, 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경제에서 산업과 금융은 근육과 피의 관계다. 산업이 근육이고 금융은 피, 즉 혈관체계다.

겉으로 보기에 근육은 멋지다. 이에 비해 피는 섬뜩하다. 근육은 멋진 모델들 사진이 떠오르지만 피는 공포영화가 생각난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근육 표면에는 많은 세균도 붙어산다. 피는 이와 달리 불순물들이 제거된 지극히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경제의 근육인 산업은 멋진 건물도 짓고 첨단 물건도 만들어내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좀비가 된 기업이나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업장들도 섞여있다. 경제의 혈관인 금융은 부실한 금융기관을 퇴출시키지 않고 남겨두면 가상의 자본이 부실화되면서 조만간 겉잡을 수없는 경제난을 초래한다.

근육을 키우는 것과 혈관을 관리하는 것은 기본 철학부터 다른 것이다. 먼지 속에서 땀을 흘려가며 근육질을 하는 산업의 사고방식으로 절대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금융에 접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도 성장기에 산업이 금융을 압도했던 한국 경제에서는 이런 산업과 금융간의 금도가 존중받지 못했다. 금융은 완전히 산업을 뒷받침하는 도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혈관이 오염되는 것과 같은 금융의 부실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이 때까지 한국은 제대로 개방된 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시장 자유화를 시작하면서도 이런 종속된 금융관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1997년 IMF위기를 맞게 됐다. 산업하듯이 금융을 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그래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은 이른바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경제논객이라는 사람이 쓸 만한 글이 없다 싶으면 밑도 끝도 없이 "금리 내려 산업을 도와라"는 글을 쓴다.

지금은 재벌그룹 고위간부들 사이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창업세대와 2세대 회장의 측근들 중에는 은행을 소유해서 은행자본을 마음껏 쓰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국제시장에서 은행을 소유한 금융자본가는 평판의 제약이 극심해 아무 사업이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까닭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금융선진국이라던 곳에서 금융의 근본을 허물어뜨린다. 금융은 물건이 아닌 숫자를 다루기 때문에 특히 수학의 본질을 거역해서는 안된다.

마이너스금리는 함수의 정의역과 치역이 갖는 기본속성을 배신한 것이다. 덧셈과 뺄셈만 배운 사람이 고등수학을 마스터해야만 다룰 수 있는 금융에 감히 끼어든 것이다.

소위 산업적 관점만 앞세우는 사람이 '무조건 금리가 낮으면 좋다', '제로금리보다 낮은 건 마이너스금리다'라는 덧셈뺄셈의 초등수학만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 결과, 금리를 이제 함수로 다룰 수 없게 됐다. 함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래프다. 장단기수익률 곡선의 그래프를 작동불능으로 만들었다.

유럽 은행들은 이제 돈을 많이 가져오는 예금고객에게는 우대가 아니라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은행들은 또 남아있는 돈을 중앙은행에 맡겼다가는 감당 못할 손실을 끌어안게 됐다. 덮어놓고 아무 기업에나 돈을 빌려줘야 된다. 부실기업을 따지는 건전성 심사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금융의 본분 가운데 하나는 경제체제의 위험제거다. 부실한 산업은 금융이 외면함으로써 체제의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마이너스금리 때문에 덮어놓고 대출을 하는 현실에서 무슨 위험제거를 할 수 있나.

자본이 우량한 영역과 부실한 영역을 가려서 투입될 수 있는 판단장치가 망가졌다. 생산성 없는 기업들도 마이너스금리로 돈을 마구 쓰고 있으니 구조조정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고, 조만간 괜찮은 일자리도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선진국이라고 유세를 떨던 나라들의 이런 오판을 차단해야 하는 아시아만의 구체적인 방어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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