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우호가 진정으로 절실한 때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 사람들의 '국뽕'기질이 특히 안 좋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문화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극심할 때다. 특히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을 '선진국 외국인'과 '외노자급 외국인'의 극단적인 두 분류로 나눠 대접하는 행태는 심각하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건전하고 상식에 기초한 세계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동남아시아는 특히 한국인들이 정확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못한 편견을 가진 지역이다. 한국인들이 역사적으로 동남아시아로부터 피해나 불이익을 당한 일은 없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군사적으로 다툴 일도 없었다.

이 지역으로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이것을 한국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만약 이 노동자들이 없다면 최일선의 산업현장은 가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은 아마도 어떤 역사적 사유가 있기 보다는 막연히 형성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19세기말부터 외세의 극심한 침략으로 5000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수난을 겪다보니 영미의 선진국에 대해서는 무한한 동경심을 갖게 됐고, 그것이 역으로 다른 문화권을 비하하는 경향을 가져온 것이다. 비하의 대상이 되는 상대는 우리를 때려본 적도 없는데 멸시를 받게 되니 더욱 억울하고 화가 날 일이다.

이런 정서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아주 끔찍한 잘못이다.

요즘 유럽축구에서 인종차별 사례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대놓고 지성을 내던져버린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벌이는 짓이다.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은 못된 성격의 사람들이 대놓고 저지를 뿐만 아니라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저지른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여전히 동남아시아를 1970년대 '박스컵 축구대회'에 불려 와서 6대0으로 지고 돌아가는 나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늘 변한다. 세계의 우열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독일을 월드컵에서 2대0으로 이기는 날이 있듯, 이제 여자배구는 한국이 태국에게 지는 일이 결코 이변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지식인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편견을 접하고 돌아가면 지역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콘크리트를 붓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체인 아세안의 정상들과 부산에서 만나 '남방정책'을 깊이 있게 의논하고 있는 오늘날 민간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부정적 감정은 반드시 양측의 국민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래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존재가 한없이 귀중한 것이다.

그의 승승장구 승전보를 통해 모처럼 한국인들이 인구 9600만 명의 베트남 국민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됐다.

박항서 감독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K팝, K드라마 스타들, 한류 대중문화 관계자들 역시 이 나라 외교관들이 해내지 못한 엄청난 외교업적을 안겨다주고 있다.

이번 한·아세안정상회담에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국 가수들을 한국에서 양성해줄 것을 각별히 요청했다.

수치 고문은 오랜 세월 미얀마에서 반군사독재 투쟁을 해 온 국가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미얀마 건국대부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미얀마 모든 국민의 애국심에 대한 살아있는 상징이다.

이런 분이 다자정상회담의 자리에서 팝음악 스타 양성을 각별히 한국 대통령에게 당부하는 모습은 정감이 넘쳐나는 면이 있다. 얼마나 이 나라 국민들이 K팝을 접하고 싶어 하기에 선친부터 국가를 위한 투쟁에 몸 바쳐온 영웅이 이런 얘기를 꺼내나싶다.

그만큼 지금 한국은 세계인들의 감성에 다가설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을 갖고 있다.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우호는 '남방정책'의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시급한 영역이 있다.

바로 아시아 정체성을 가진 금융권위체의 형성이다.

정부든, 중앙은행이든,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하고 미래를 함께 개척하려면 전문가들의 해박한 미래분석만으로는 변죽만 울리고 만다. 양쪽의 민중들이 서로에 대한 호의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다행히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에는 역사적으로 얽힌 악연이 별로 없다.

비교적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면, 한국과 이 지역의 금융인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어떻게 서구금융에 맞먹는 기구를 만들 수 있나'며 겁을 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절실한 필요의 시기가 오면 두려움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거래가 보장되는 나라들일수록 무조건 달러중심 경제체제에서 자국 경제가 불공정하게 예속돼 자국의 금융자산이 제 평가를 못 받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안가질 수 없다.

하나 아쉬운 건, 박항서 감독 덕택에 양국 국민의 호감이 급상승한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여서 아직 금융공동체 논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박 감독이 던져준 중요한 선물은 있다. 동남아시아를 까닭 없이 저평가하는 말버릇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지만 본심에는 얼마든지 진심어린 성원과 호의를 주고받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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