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권위주의 시대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을 때리는 몽둥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국민을 대하는 일이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 역시 법에 타당한지 감시를 받다보니 때로는 현장에서 권위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싸움이 난 시민들을 말려야 할 때도 있다.

왕조시대 사또들은 사람들 싸움도 자신의 판단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절대적 권위가 있었지만 지금 검찰과 경찰 등의 공권력에겐 머나먼 옛날의 일이다. 시민들이 파출소까지 와서 다투더라도 일단 말리고 진정시키는 게 제일 무난한 일이 됐다.

'재벌 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런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다. 재벌그룹 내 다툼이 벌어졌을 때 "식구들 간에 좋게 좋게 해결하시라구요"라면서 돌려보내는 일도 해야 되는 모양이다.

조양호 회장이 지난 4월 타계한 후 한진그룹은 후계총수에 해당하는 동일인을 정해서 공정위에 보고해야 했지만 어쩐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공정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5월 중순 들어 조원태 현 회장을 동일인으로 직권 지정했다.

한진그룹이 왜 먼저 동일인 보고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재계에서는 총수 일가의 이견이 커진 때문이 아니냐고 추측했었다. 그 추측을 뒷받침하는 일이 23일 발생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 회장에 대해 "선친의 유훈과 달리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고 포문을 연 것이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남매의 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조양호 회장 타계 후 한 달 넘게 동일인 보고를 못한 원인도 삼남매 간 이견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공정위로서는 당시에 이미 이같은 정황을 파악했을 법 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본 끝에 동일인 직권지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진그룹 총수들 사이에는 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가 분할경영을 하는 움직임도 보였고 '재벌갑질' 행위에 대한 재판에서 총수일가가 실형을 면하는 일도 있었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고문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밀수 등 혐의에 대한 지난 20일의 2심 재판에서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세간의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어떻든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끊이지 않던 뉴스의 초점에서 당분간 멀어지겠다는 전망이 나왔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인 조원태 회장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래저래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 대한 뉴스는 하루도 끊일 날이 없게 됐다.

재벌그룹의 3세 승계는 한진그룹에 앞서 몇몇 그룹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은 2세 회장의 고령 및 와병으로 실질적인 3세 시대에 들어섰고 LG그룹은 특유의 적장계승 문화와 함께 4세 시대를 열었다. 이들 그룹의 승계에 대해서는 과연 앞선 회장들과 같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승계에 대한 내부의 이견은 거의 전해지는 것이 없다.

상속 형제들의 이견이 불거진 한진그룹은 국내 행동주의펀드와 경영권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끄는 곳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이 예전보다 더 첨예한 이해를 파악하고 이뤄져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식구들 간에 좋게 좋게 해결하시라는 의도와 달리 정부가 누구 편을 드느냐는 시비에 휘말릴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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