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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주의 필망론, '성지예견'일까
마르크스 자본주의 필망론, '성지예견'일까
  • 장경순 기자
  • 승인 2019.12.26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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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서구 중심 금융, 스스로 모든 이론의 틀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 /사진=위키피디어 퍼블릭도메인.
칼 마르크스. /사진=위키피디어 퍼블릭도메인.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사회주의 사상의 원조인 칼 마르크스는 위대한 사회과학자와 무모한 혁명가의 인생을 함께 살아간 사람이다. 그의 과학적 업적이 위대하다고 해서 그가 주장했던 혁명구호들을 옳다고 할 수 없으며 그의 혁명주장이 무모하다고 해서 그가 남긴 사회과학의 업적들을 쓸모없다고 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석학 레몽 아롱의 마르크스에 대한 평가 또한 이와 같다. 아롱은 1977년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그의 정책을 호평할 정도로 우파 성향의 지식인이다. 아롱의 저서 '지식인의 아편'은 마르크스주의에 빠진 서구지식인들을 아편중독자로 비유한 것이다.

한국에서 교과서로도 널리 쓰이는 그의 저서 '사회사상의 흐름' 서문에서 아롱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로 국제 사회학 세미나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동구권에서 온 사회학자들은 사회주의 경전만이 절대 옳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그런 것은 다 필요 없고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라며 통계결과를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과연 이 사람들을 칼 마르크스 및 막스 베버와 같은 장인들과 같은 부류로 볼 수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아편으로 혹평하면서도, 학문의 선배로서 마르크스는 존경하고 있다는 평가다.

마르크스가 남긴 말 중에는 자본주의 필망론이 있다. 자본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망하게 돼 있다는 말이다. 이는 사회과학자가 아닌 혁명가로서 남긴 말로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자본주의 필망론은 후세 좌익 혁명가들에게 논쟁거리가 됐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망할 테니 혁명가들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고 구석에 가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 논란거리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 동구권 붕괴에 이어 1991년 소련 해체로 유럽만 놓고 본다면, 자본주의에 훨씬 앞서 공산주의 체제가 먼저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사라진 이후, 경쟁자 없이 독주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 또한 2010년을 전후해 뭔가 불안한 데가 부쩍 늘어났다.

공산주의자들이 정말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냉전시대 같이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를 보내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더 일찍 스스로 허점을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산권과 경쟁하고 있을 때는 자본주의권 내의 시민들에게 자발적인 규율이 더 높은 경쟁력을 만들어냈는데, 유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1990년대부터 자본의 탐욕성향이 더 노골화됐다.

이것도 우량자산이고 저것도 우량자산이라며 자기들끼리 멋대로 등급을 매겨가며 흥청망청하다가 부실이 한번 터지니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됐다. 이걸 교훈삼아 다시는 믿을 수 없는 위험자산에 우량의 허상을 씌우지 않도록 다짐을 해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엊그제까지, 아니 현재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아시아가 아닌 유로존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금도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아무데나 자의적으로 '우량'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있고 이들의 허위 가격표에 아시아는 매번 속아 넘어가면서 저들의 '우량'자산을 없어서 더 못 사고 있는 지경이다.

마르크스를 포함한 19세기와 20세기 그 어떤 석학도 예상하지 못한 21세기의 현실이다.

금융은 부실이라는 허위를 견뎌내지 못한다. 언젠가는 커다란 파열음을 내고 만다. 아시아가 45억 명 인구의 경제력으로 끝없이 밑천을 지탱해주는 동안 서구 중심의 세계 금융은 부실의 폭발력을 계속 키워왔다. 이게 터지면 그때야 말로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자체 모순에 의한 필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몇 차례 지적했지만, 현재의 세계 금융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너스 금리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합리적인 자금 이동을 예상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은 모두 망가졌다. 장단기 금리곡선을 이용한 이론도 뒤죽박죽이 됐다. 남의 돈을 더 오래 빌리는 사람이 이자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도 금융이론이 수용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가 망할 지경이 됐다하더라도 그걸 마르크스의 예견이 맞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모순은 자본의 탐욕과 인간성의 말살 등에 관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자본주의는 오늘날과 달리 인간을 노동기계로 간주하는 성향이 매우 강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망하기에 앞서 그의 사상을 신봉하던 공산체제가 먼저 망해서, 설령 자본주의가 망한다 해도 "우리가 옳았다"며 큰 소리치고 나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박물관에 남아있는 고전이론가들 사이의 갑론을박이 아니다. 무엇하나 스스로의 주체적 의지로 해본 적 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억울하게 대혼란의 고통을 끌어안게 되는 아시아인들의 운명이다.

진정으로 아시아인들의 자각이 필요한 때다.

특히 이런 인식을 한국이 먼저 해야 할 환경적 이유도 있다. 철저한 서구중심 금융체계에서 말로는 우량하다면서도 실제로는 손발이 묶인 대표적인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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