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조지 오웰의 '1984년', 현실에선 이렇게 이뤄지고 있다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가장 훌륭하게 연기하는 배우 에드 해리스. /사진=네이버 영화.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가장 훌륭하게 연기하는 배우 에드 해리스. /사진=네이버 영화.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 글을 처음부터 따라 온 독자들은 쉽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호텔 델루나' 얘기도 나오고 '매트릭스'와 같은 미래를 다룬 영화 얘기도 나왔다. 아직 이름 자체는 언급이 된 적은 없지만 또 다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이 가상 세계에 빠져서 살아가는 상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중앙은행 정책을 논하고 있다. 재미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글 같더니 알고 보니 어려운 금융정책서가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 채권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자세하게 다룬 것은 거기에 담겨있는 문제의 본질이 서두에서 언급했던 미래를 예견하는 점과 관련이 돼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그것이 전부 허황되다고 일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헛된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 한국 국고채의 왜곡된 평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제도 개선의 차원이 아닌 더 본질적인 문제가 담겨있다.

지금의 세계 중앙은행 체계는 아시아는 영원히 서구 중심 금융의 밑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철폐했을 때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황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중앙은행 체계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틀이다. 그런데 이 기본틀이 이제는 기본적 수학이론도 적용하기 힘들게 됐다. 수학을 쓸 수 없는 경제는 무기 없는 군대와 같다.

앞서 말했듯, 오로지 사변적인 방법에만 의지했던 19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환생한다면 "우리가 이겼다"고 큰소리칠지도 모른다.

영국작가 조지 오웰은 20세기를 살다간 사람이다. 소비에트 정권의 탄생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의 시작까지 지켜본 그는 공산주의를 비유한 두 개의 유명한 소설을 썼다. 하나는 소련의 탄생을 비유한 '동물농장'이고 또 하나는 공산주의 철권통치의 미래 형태를 예견한 '1984년'이다.

1984년이란 제목은 그가 이 소설을 쓴 1948년의 숫자 두개를 바꿔서 만들어졌다. 그가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꽤 먼 미래로 여겨졌던 것이다.

비디오아트 작가 백남준이 1984년에 이 소설을 묘사한 작품 '1984년'을 만들자 소련은 당시 한국이 전두환 독재체제임을 지적해 "한국이야 말로 1984년에 나오는 나라"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한국은 1987년에 민주화운동으로 군사독재를 몰아냈고, 소련은 1991년 와해돼 러시아연방으로 바뀌면서 공산주의 통치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1984년'의 공포는 완전히 사라졌나.

만약 인류가 강압적 통치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 1984년으로 가고 있다면 그것을 독재라고 봐야 할 것인가.

오웰의 동물농장은 전적으로 소련의 탄생과정을 비유한 것이 맞지만, 1984년은 소련에 맞선 서방체제의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도 풀이됐다.

주인공 윈스턴의 집에는 매우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다. 아주 작은 구석인데 이곳이 유일하게 이 집에서 감시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이다. 즉, '빅 브라더'가 볼 수 없는 곳이다.

이렇게 이 세계의 인물들은 인생의 대부분 정보를 권력자에게 노출하면서 살아간다. 1984년의 사람들은 권력의 강요에 의해 정보를 뺏긴 것이다.

요즘 강조하고 있는 '공유사회'는 정보를 권력이나 재벌이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해 그에 따른 댓가를 얻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쓰다보면 엄청난 할인을 제공하는 쇼핑몰을 접하게 된다. 이 사이트가 파는 물건의 가격은 저렴한 정도가 아니다. 말 그대로 초토화된 가격인 90%대 할인을 제공한다.

예전의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전부 거짓말인데, 이건 밑지는 정도가 아니다. 그냥 공짜로 주는 것에 가깝다.

사실은 이 사이트의 구조는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헐값에 물건을 팔면서 반대로 얻어가는 것이 있다. 이용자의 세세한 정보다.

모든 생활이 담긴 휴대전화의 정보를 더 많이 가져갈수록 할인의 폭이 더 커진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자신의 전화번호부를 흔들며 "이게 10억짜리 전화부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의 전화기에 담긴 전화부, 인터넷접속기록이 모두 합쳐져 10억짜리 전화부가 된다.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 정보 모두 빼내봐야 10만원이나 될까싶지만, 이걸 다 모으는 사람에게 가면 차원이 달라진다.

이른바 '빅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막강한 빅 데이터의 수집은 전화기, 택시의 운행정보 등 이미 요즘 사람들 생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제보상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려 들 것이다.

'1984년'에서 유라시아를 통치하는 빅 브라더가 누구인지 오웰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만약 오늘날 '1984년'을 썼다면, 빅 브라더는 전쟁이 아니라 빅 데이터의 수집으로 집권한 것으로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소설 '1984년' 이후 '빅 브라더'는 누군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러셀 크로는 먼 발치의 기관원을 보고 "저 빅 브라더는 누구요?" 라고 묻는다. 얼굴도 안 보인 이 사람이지만 크로의 망상에서는 에드 해리스로 형상화돼 나타난다.

해리스는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정상급의 연기자다. 그의 이런 면모는 짐 켈리가 주연한 '트루먼 쇼'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트루먼 쇼'는 순진한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전 세계 시청자의 구경거리가 된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돼 가고 있다.

짐 켈리는 진실을 알고 나서 '빅 브라더'의 슬하를 뛰쳐나가는 선택을 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빅 브라더'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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