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고도 정보통제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저항의 상징인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그러나 고도의 정보통제사회에서 반체제 저항 역시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사진=위키피디어 퍼블릭도메인, 알베르토 디아즈 구티에레즈.
저항의 상징인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그러나 고도의 정보통제사회에서는 반체제 저항 역시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사진=위키피디어 퍼블릭도메인, 알베르토 디아즈 구티에레즈.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앨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비슷한 1980년대 말의 영화가 있다.

고도로 통제된 사회라는 점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비슷하지만, 통제 방식이 감시와 탄압보다 쾌락에 빠진 사람들의 자발적 복종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거의 대부분 푸른 하늘과 자연의 초목을 볼 수 없다. 등장하는 장면 모두가 고급 쇼핑몰의 실내와 비슷하다. 주인공 남자의 어머니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성형수술을 통해 미모를 유지하고 매일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주인공은 이 세계 사람으로는 특이하게 한 여인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이어서 그녀와의 데이트는 엄청난 위험을 몰고 온다.

주인공 남녀는 위험할 때마다 '터틀'이라는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체제의 힘은 너무나 위력적이어서 주인공은 끝내 체포돼 의식을 개조하는 수술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수술이 시작되려는 무렵, 화살이 한대 날아와 의사를 쓰러뜨린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건 역시 터틀 전사들이다. 주인공은 수술장을 탈출해 사랑하는 여인이 운전하는 기차를 타고 이 사회의 벽을 부수고 드디어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이 있는 공간으로 나간다.

하지만 이 해피엔딩 같은 장면은 사실 주인공의 환각이다. 터틀 전사들이 나타나고 의사가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부터 환각이 시작된 것이다. 환각은 수술의 시작과정이었고 예정대로 수술이 진행되려고 하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정당성을 갖고 있는 정의로운 체제를 위협한다는 건 파괴분자다. 그러나 체제 자체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고 불의한 것이라면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정의로운 저항이면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사회체제는 고도의 통제력을 갖추게 된다. 이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통제사회를 무조건 반인간적 범죄라고 할 수 없다. 지금 도시 곳곳에 깔려있는 CCTV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CCTV를 설치할 때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반대한 사람보다 지역안전이 강해진다고 환영한 사람이 더 많다.

승용차에 달려있는 블랙박스는 예전에는 잘잘못을 가리기 힘들었던 시비를 명쾌하게 가려준다. 택시기사들은 블랙박스 덕택에 요금을 안내고 도망가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팔팔한 젊은이가 돈을 안내고 갑자기 도망가면 따라가 잡을 수도 없거니와 한참을 쫓아가 잡는다하더라도 그날 영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런 감시체계는 기본적인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사회는 더 자발적인 형태로 더 많은 정보를 개개인으로부터 얻어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결제하고 점심식사 후 커피점에서 앱을 이용해 커피주문을 하면 이 사람의 모든 하루일과는 전화기를 통해 이 세상 어딘가의 서버에 상세하게 저장된다.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비싼 물건은 앱을 이용해 90%가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다. 이 앱은 사용자의 전화기에 있는 전화부, 앨범 등 모든 정보를 가져간다.

처음에는 이렇게 정보를 많이 제공해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몇 번 쓰다 보니 경계감이 무뎌졌다. 더욱이 대부분 물건을 이 앱을 통해 사면서 점차 돈의 씀씀이도 여기에 맞춰졌다. 이제는 90% 할인이 아닌 제 가격으로 물건을 사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지출이 됐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은 분초의 단위로 자신의 인생정보를 거대 정보망에 제공하고 있다. 어디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체제가 찾아내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도저히 숨길 길이 없다. 국가가 최종적 접근권을 갖고 있는 시스템 앞에서는 개인의 비밀이 전혀 없는 인생이 됐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순간순간이 모두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사회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간섭을 편리함의 당연한 댓가로 여긴다. 이렇게 본다면 아무 문제의 소지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에는 이런 태평성대(?)를 좌시하지 않는 성향이 한 구석에 숨겨져 있다. 누군가는 나서서 이 체제의 본질이 과연 정의로운 것이냐를 의심한다.

그런데 의심한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나. 이미 그 역시 자신의 세세한 정보가 모두 체제의 서버 곳곳에 저장돼 있다. 체제가 그를 특정해 집중감시를 시작하면 그는 무슨 일이든 시작도하기 전에 들켜서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래 고도통제사회의 반체제 인사들은 체제의 정보망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체제에 순응해 앱을 쓰는 사람들보다 세 배, 네 배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도 '나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지출로 여긴다.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을 쓰려고 할 것이고, 이메일보다는 인편을 통한 서신왕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목마다 얼굴인식을 할 수 있는 감시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임꺽정이나 로빈 훗처럼 신출귀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카메라를 지켜보는 감시 인력을 고용하는 등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자체가 체제교란 행위가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커피점들은 점점 더 현금을 안 받으려 한다. 이런 곳에서도 굳이 카드결제를 거부하고 현금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정보통제사회의 반체제 성향이 강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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