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미국과 유럽 '흥청망청' 파티에 갖다 바쳤다

수출 컨테이너. /사진=뉴시스.
수출 컨테이너. /사진=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는 대단하다. 이게 너무나 훌륭해서 미국으로부터 환율감시를 받을 정도다.

2018년 세계적인 반도체 수요가 가라앉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까지 빚어져 다소 위축됐다고 해도 1100억8600만 달러의 상품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수출을 통한 고도성장을 달성했지만 1997년까지는 무역수지 만성적자국이었다. 그러나 IMF 위기를 겪으면서 흑자국으로 바뀌었다. 경제가 덩치보다 수익을 중시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겪으면서다.

상품수지 흑자는 갈수록 커져 2015년 1202억 달러를 기록한 후 계속 11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매년 128조 원을 넘는 돈이 해외에서부터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 오히려 한국의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까닭인가.

금융회사 간부를 지낸 사람은 "마치 양적완화를 하는 것과 같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오는 것인데 이 돈이 전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출해서 번 돈이 전부 어디로 갔느냐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우선,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로 전부 낭비했다는 주장은 바로 기각이다. 이 사업들의 예산 남용은 철저히 조사해서 파헤치고 후세 교훈으로 삼아 마땅할 일인 건 사실이나 전부 2012년 이전 이야기다. 상품수지는 이들 사업이 끝난 후에 더욱 커졌다.

수출로 돈을 번 재벌들이 돈을 유보금으로 쌓아놓기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재벌은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아주 '탐욕스런'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돈을 더 벌 확신이 없어서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걸 무조건 잘못됐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쌓아두기만 한다는 자체가 과연 맞는 분석인지도 불분명하다. 요즘 들어 전기자동차 개발에도 나서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기쁘게 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짓기도 한다. 또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기업 공장을 세워서 남방정책을 더욱 현실화하기도 한다. 쌓아두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쌓아두는 자체를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재벌 유보금이 수출을 전부 잡아먹었다는 얘기도 별로 와 닿지 않는 얘기다.

이 글의 저자들은 이런 것과 전혀 다른 요인을 지적한다.

지나친 서구 우량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가 2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의 모든 무역수지 흑자에 대한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실증적이고 학문적인 검증이 이뤄질 필요는 있다.

그러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 역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아시아가 채권을 너무 사서 과잉 저축(savings glut)을 초래하고 있고 이 불균형의 이유는 아시아의 무역흑자를 전부 미국 국채 사는데 쓰고 있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미국은 무분별한 신용놀이로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유로존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부실 소지가 많은 나라까지 유로존으로 포함시켰다. 투자를 할 만한지 지극히 의심스런 나라까지 유로존에 들어가 독일과 같은 초우량국가와 함께 유로를 단일통화로 쓰고 있다.

'그렉시트' 위기를 초래했던 그리스가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시아의 피와 땀이 깔려있다.

아시아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에 장시간 일을 하면서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번 돈을 이 지역의 금융엘리트들은 미국과 유럽의 소위 '우량자산'에 그대로 갖다 바쳤다. 아시아의 빈부격차 해소에 쓰지 못하고 세계의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구중심의 금융체제가 보통 뒤숭숭한 게 아니라는 요즘의 현실이다. 자칫하면 이게 다 터질지도 모를 우려를 해야 마땅하다.

서구 우량자산을 엄청나게 쥐고 있는 아시아가 그 폐해를 그대로 뒤집어쓸지도 모를 일이다. 잘 나갈 때는 저들의 흥청망청하는 신용놀이를 밑받침했고 위기가 터지면 충격을 가장 먼저 흡수해주는 희생양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국제 경제는 돈의 흐름(plumbing)이 막혀 있는 상태다. 앞서 소개한 IMF의 만모한 싱이 서울에 와서 지적한 얘기다.

현재 상황에서 돈의 흐름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은 담보다. 그런데 이 담보가 서구 자산에만 집중돼 돈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다.

한국 채권을 국제 담보로 활용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지금 진정으로 믿을만한 우량 담보자산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채권은 5대 우량채권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담보활용 길이 막혀 있으니 한국 채권은 그저 '관상용'일 뿐이지 실용성이 전혀 없다.

아시아 입장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서구 자산에 묶인 돈을 다양하게 투자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피땀흘려 물건 팔아서 번 돈을 진정으로 우리 스스로를 위해 쓰는 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 국제금융기구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이 막중한 일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우량 아시아 자산의 국경간 담보화에 앞장 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앞장 서 분발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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