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 /사진=뉴시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에 대한 외신뉴스를 미국 정치인들이 대폭 차지하고 있는 17일이다.

이날 마이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월스트릿저널에 '한국은 동맹국이지 부양가족이 아니다'라는 글로 한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마든지 각자 부처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장관들이 굳이 언론기고문을 공동작성하는 모습이 매우 이례적이다.

대개 신문에 직접 글을 쓰는 것은 뭔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 하는 행동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분담금을 5배 이상으로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미국에서는 여러 언론이 거의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기고문이 정치보다 경제전문지로 더 잘 알려진 월스트릿저널에 실린 배경도 주목된다.

미국내 일간지 발행부수로는 월스트릿저널이 USA투데이에 이은 2위다. USA투데이가 널리 알려진 신문 가운데서는 비교적 연륜이 짧고 타블로이드판으로 탄생한 역사에서 비롯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미지를 의식해 월스트릿저널을 선택했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건 현재 미국 행정부에 대해 그나마 우호적인 것이다. USA투데이는 오랜 세월 선거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입장을 지키다가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구호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다"며 그때까지의 관례에서 벗어났다.

발행부수와 별개로 언론으로서 권위가 가장 높은 곳으로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양대 신문이 있다.

그러나 두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가짜뉴스(fake news)", "망해가는(failing)" 등의 'f-워드' 비난을 달고 사는 곳들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비공식 기자간담회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CNN, 폴리티코 등과 함께 입장이 금지되는 푸대접을 받았다. 이들의 빈 자리에는 친 트럼프 성향을 가진 새로운 매체들이 참석했다.

워싱턴포스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갈등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의 주인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에 대해 다양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아마존이 미국 우편시스템을 마구 부려먹는다"고 비난한 것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100억 달러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 입찰에서 유일한 적격자였던 아마존을 따돌리기 위해 시간을 늦춰 마이크로소프트를 사업자로 선정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사를 통해 자신들의 최대주주가 베조스 회장임을 강조하면서 미국 정부의 사업자 선정 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주주를 밝힌 것은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편파성이 의심될 만한 여지를 스스로 감추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부터 제호아래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표어를 게재하고 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트럼프 행정부의 장관들이 두 신문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싣기도 멋쩍은 일이다. 대통령이 "망해가는 가짜뉴스"라고 비난을 퍼붓는 곳에서 장관들이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외신들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가 그의 콧수염으로 인해 반한인사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하고 있다. CNN, 뉴욕포스트 등 미국 매체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가디언, 텔리그라프, 인디펜던트 등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 증액을 강요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가 주한미대사로 부임해도 한국인들의 눈총을 피하기는 어렵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의욕적으로 한반도 평화정책을 추진할 때는 해리스 대사에 대한 이렇다 할 비난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에 대해 주요수출품 공급을 중단하며 관계를 악화시키자, 해리스 대사의 모계가 일본이란 점이 다시 부각됐다.

또한 해리스 대사 본인부터 뭔가 마음에 안맞는 일이 있을 때 참석을 약속했던 한국 행사에 불참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다. 부임지 사람들에 대해 상당히 낯가림을 하고 불쾌한 일은 해소하기 보다 노여움을 반드시 표현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이와 함께 해리스 대사는 전임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각별한 친근감으로 인해 더욱 골이 깊어지는 면이 있다.

그의 전임자인 마크 리퍼트 전 대사는 재임 중 한 행사에서 한국인으로부터 불의의 피습을 당해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국민들은 그에 대해 대단히 깊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재임 중 한국에서 태어난 두 자녀에게 한국인 이름을 붙여 준 그는 두산베어스 팬으로 퇴임 후에도 자주 두산유니폼을 입고 잠실야구장을 찾고 있다. 야구 관람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 등의 행사에도 주요 참석자로 자주 동참하고 있다.

역대 미국대사 그 누구보다도 한국친화적인 그는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승리했을 경우 유임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는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리퍼트 대사시절과 비교되면서 해리스 대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이 더욱 커지는 점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의 정책이 한국인들을 납득시킬만한 것들이라면 대사 부모의 국적이나 콧수염이 소동을 불러일으킬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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