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중국체제를 흔들지 않는 금융시장, 대외협력이 해답이다

중국인민은행 베이징 본부. /사진=AP, 뉴시스.
중국인민은행 베이징 본부. /사진=AP, 뉴시스.

[최공필 박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중국이 금융에서도 대국에 걸맞은 위상을 가지려는 것은 분명하다. '축구굴기'처럼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정도로 표어까지 내세우는 건 아니어도 중국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금융대국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설립한 것도 한 예다.

러시아는 예전의 소련과 달리 이제 공산주의국가가 아니지만, 중국은 명백히 공산당 일당통치를 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그럼에도 상하이주식시장 시가총액은 5조 달러로 모스크바거래소의 6억3500만 달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중국의 금융지향점이 순수한 금융보다는 개발정책의 뒷받침에 더 주력하는 경향은 있다. 이런 경향은 중국의 정치체제에 따라 불가피한 면이 있다.

금융은 자유로운 거래를 전제로 한다. 시장의 냉정한 손익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호재라 해서 환영받고 악재가 될 만한 일은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풍토에서는 절대로 금융시장이 정착할 수 없다.

한국이 1997년 'IMF 위기'를 겪으면서 개선책으로 도입한 것 가운데 하나가 외환시장의 변동폭 철폐다. 그 전에는 매매기준율을 중심으로 상하 2.25% 범위에서 원화환율이 오르고 내릴 수 있었다. 환율의 폭등과 폭락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위기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어차피 폭등 폭락할 환율이라면 그날 하루를 틀어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다. 2.25% 상한에 걸려 더 이상 환율이 오를 길이 막히자 딜러들은 모두 일손을 내려놓고 그날 일과를 마무리해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날 시장이 다시 열리자마자 달러 매수에 매달려 순식간에 2.25%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또 일손을 내려놓았다.

지금의 중국금융시장은 1990년대 초 한국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중국 역내 외환시장이 인민은행의 매매기준율 중심으로 거래를 하는 점은 그 가운데 하나다.

더 비슷한 점은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원인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중국의 경제지표가 부진한 날 오히려 상승할 때가 많다. 지표가 부진하면 중국 당국이 부양조치를 내놓을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이 완전 개방돼 있지 않은 가운데 당국의 정책의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였던 대표적인 시장이 1990년대 서울 외환시장이다. 해외 변수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과연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절대적인 관심사였다. 이 무렵에는 당국자들과 딜러들이 금요일 호프를 갖는 자리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당국자가 개입여부를 미리 알려줄 정도의 무분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딜러들은 이렇게 낯을 익히면서 당국자들의 성향을 파악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중국의 국가체제에 비춰보면 체제를 희생해가면서 금융을 최우선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중국에서의 사회주의는 이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의 통합매개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된 뒤로는 사회주의 중국이 할 수 없는 금융기능을 홍콩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 집권 후 자신들의 체제를 '일국양제' 내 모든 지역에서 강화하자 당장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말았다.

홍콩 시위가 계속 되면서 중국은 선전을 대체 금융시장으로 육성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홍콩보다도 더 사회주의 중국의 직할 통치를 받는 선전이다. 이런 점에서의 발전 한계는 홍콩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면, 보기 싫은 꼴을 안보겠다는 정책적 태도로는 절대로 금융시장이 제대로 발전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금융에 관한한은 최근 20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과의 협력을 더욱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피땀 흘려 수출해서 번 돈을 그대로 미국이나 유럽채권으로 갖다 바치면서 저들의 '마이너스 금리 파티' 제물이 될 바에는 아시아 자체의 우량 담보시장을 만들어서 위험을 분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 점은 무려 3조 달러나 되는 돈을 외환보유액으로 묶어놓고 미국과 유럽을 배불리고 있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2000년 이후 겪은 경험들은 '고도성장기' 오로지 부지런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시대에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다. 한 재벌이 위기에 몰려 형제관계인 다른 재벌이 도와줬더니 원화환율이 끊임없이 폭등했다. 부실한 회사에 우량한 회사까지 말려들어가는 구태가 여전히 반복된다는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발동한 탓이다.

반면 재벌회장들이 지배구조문제로 유난히 수감이 많이 됐던 시기에는 700 수준의 주가가 2000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수감된 회장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국제투자자들은 이제 지배구조의 기본 요건이 갖춰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에 대한 투자등급을 몇 단계 더 올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옥신각신은 중요한 성장통이었다. 정치적인 격변과 맞물려 이 합병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다. 해당 재벌 총수와 국민연금 이사장이 수감생활을 한 것은 일부에게는 성에 안 찰 수는 있어도 어떻든 시장의 승리를 확인한 것이다.

한국이 겪은 이러한 금융교훈을 지금의 중국체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다. 중국에서도 재벌 총수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일은 일어난다. 그러나 국제 투자자들은 그런 일을 시장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확립보다는 당국의 정책의지의 차원에서 해석한다.

한국은 금융거래 중심지를 스스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고 중국은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금융의 모든 것을 허용하기는 어렵지만 양대 경제대국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시장을 가까운 곳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이해는 금융에 대한 두 나라의 협력기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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