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일부 탈피에 불과"..."완전 탈피 때까지 초심 잃지 말아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일본이 과거 전쟁범죄를 반성하기커녕 한국의 배상요구에 대해 주요수출품 공급중단의 도발을 감행해 분노를 초래한 것이 지난해 7월1일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함께 만난 바로 다음날 일본은 이런 도발을 감행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이길 길이 없으니 무조건 물러서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21일 일본의 언론은 이런 우려와는 다른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의 번역에 따르면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 규제에 나섰더니 오히려 한국에서 일본의존도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예전 정권들 시기에도 비슷한 노력이 있었지만 성과를 못낸 것에 반해 이번에는 정부와 대기업, 중소·중견기업이 본격적으로 협력해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참으로 통쾌하게 들리는 일본 언론의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사 하나에 일희일비하거나 한 순간의 기싸움에서 이기고지는 것이 아니다. 부품자립화를 이룩하고 여타 산업부문에서도 지나친 대일 소재의존을 벗어나는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원론적 얘기를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무슨 성과가 있다는 얘기만 나오면 거기서 모든 추동력들이 사라져서 예전의 '편한 것이 좋다'는 안일한 태도로 돌아가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언론의 보도 역시 냉정하게 따져볼 것들이 있다.

우선 보도한 곳이 아사히신문이란 점이다. 일본의 5대 신문 가운데 하나로 발행부수가 2위인 이 신문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으며 일본의 과거침략범죄에 대해 가장 전향적으로 반성을 요구하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신문이 전하는 기사는 진정으로 아시아 각국이 미래를 함께 지향할 충정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볼 만하다.

상대적으로 아베 신조 총리와 같이 인기에 영합해 과거 잘못에 회귀하려는 정권에 대해서는 더욱 매서운 비판의 논조를 갖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사람이라면 아사히에 대해 "가짜뉴스"라는 비난을 입에 달고 살만한 그런 신문이다.

자국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기위해 현실보다 더욱 따가운 지적을 했을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아사히 기사에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 신문은 한국의 부품국산화에 대해 "한국 여론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대기업이 양산하는 수준이 돼야 국산화에 성공한 것인데 향후를 전망하기 어렵다"는 업계 일각의 반응을 소개했다.

냉정하게 말해 "예전과 기세가 다르긴 하지만, 아직은 아무 것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국산화가 예전과 다르다는 지적이 아베 정권에 대한 쓴 소리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은 한국에 대해 "초심을 잃지 말라"는 충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반도체 생산공장을 둘러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 /사진=뉴시스.
반도체 생산공장을 둘러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 /사진=뉴시스.

대기업들이 처음의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중소기업에 마음을 열고 함께 고민하던 자세를 저버리는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이것이 초심을 잃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성질을 누르고 기회를 기다리는 '참을성'에 장점을 가진 상대다. 한국이 또 다시 일본의존 탈피의 적기를 놓쳐버린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일본은 또 다시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하다.

참을성이 강한 상대에게 제일 쉬운 먹잇감이 되는 것은 순간의 작은 성취에 빠지는 '냄비기질'이다. 부품국산화는 정부와 업계,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이 모두 장기적인 계획을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차제에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이 되는 민족적, 국민적 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외신뉴스를 보면 댓글칸에서 "일본이 사과를 하는데도 한국은 계속 보상을 요구한다"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일본 제국주의 잔재세력의 강변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체의 정보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침략을 받고 어떤 수탈을 받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시점에서 일본의 무력침공이 시작됐던 1895년 명성황후 참살 이후 50년 동안 모든 피해를 일일이 알 수도 없었다. 위안부의 문제만 해도 1991년이 돼서야 제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기자의 경우는 중학생 때 국사 선생님의 어느 날 열정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남보다 10여년 먼저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국가 간의 배상이야 조약으로 합의를 했다 해도 위안부와 강제징용공 등의 반인륜적 범죄가 개인을 파괴한 행위는 어느 나라 국민이냐를 떠나 문명사회에서 반드시 진실을 찾아내 죄 있는 자를 단죄하고 피해자를 위로해야 할 일이다.

독일은 1945년 종전 이후 한 번도 패전의 결과 상실한 영토반환을 요구한 적도 없고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폴란드 등 피해 당사국들에 사과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은 침략 잔재세력들의 뻔뻔한 강변을 그대로 옮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사람이 많다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지만 일부 식자를 자처하는 사람까지 여기에 동조하는 것이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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